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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축구는 왜 축구인가 — 이름 하나에 숨은 163년의 줄다리기

오십보 백보 2026. 6. 2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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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축구는 왜 축구인가 — 이름 하나에 숨은 163년의 줄다리기

 


지금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매일 쓰는 "축구"라는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 영어로는 왜 어떤 나라는 풋볼이라 하고 어떤 나라는 사커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공 하나를 둘러싸고 벌어진 163년 전 런던의 회의실 풍경부터, 단어 하나를 둘러싼 영국과 미국의 자존심 싸움까지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163년의 줄다리기


"축구"라는 한자어, 정작 일본에서는 사라졌습니다

먼저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축구(蹴球)'는 "찰 축(蹴)"과 "공 구(球)"가 합쳐진 한자어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어 '슈큐(蹴球)'를 그대로 들여온 번역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오늘날 일본에서는 이 한자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 '삿카(サッカー, soccer)'를 주로 쓰고, '슈큐'라는 표현은 사실상 사어가 되었습니다. 일본이 만들어 한국에 건너온 번역어가, 정작 만든 나라에서는 잊히고 받아들인 나라에서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야구(野球)나 배구(排球) 같은 다른 구기 종목 명칭도 마찬가지 운명을 겪었습니다.

축구(蹴球)라는 한자어 – 일본에서는 사라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축구가 처음 한반도에 소개됐을 무렵에는 '축구'라는 말조차 없었습니다. 종목의 이름을 몰라 척구(蹢球)나 경구(競球) 같은 단어로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Football, 그리고 Soccer — 둘 다 영국에서 태어난 형제

영어 'football'은 본래 발(foot)을 주로 써서 공(ball)을 다루는 여러 경기를 통칭하는 말이었습니다. 19세기 영국에는 손도 쓰는 럭비 풋볼, 손을 거의 쓰지 않는 어소시에이션 풋볼 등 다양한 '풋볼'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Football과 Soccer – 둘 다 영국에서 태어난 형제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미국식 표현"이라고 여기는 'soccer'는 사실 19세기 영국 상류층 학생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속어입니다. 1863년 런던에서 협회(Association)가 정식 명칭을 'Association Football'로 정하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학생들 사이에서 단어 끝에 '-er'를 붙여 줄여 부르는 유행이 있었습니다. 럭비 풋볼은 '러거(rugger)'로, 어소시에이션 풋볼은 'Assoc'에서 따와 '사커(soccer)'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즉 soccer는 영국이 낳고 미국이 길러낸 단어인 셈입니다.


1863년 10월, 런던의 한 선술집

1863년 10월, 런던의 한 선술집

근대 축구의 출발점은 비교적 정확한 날짜로 남아 있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의 각 학교와 클럽은 저마다 다른 '풋볼 규칙'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곳은 손으로 공을 들고 달려도 됐고, 어떤 곳은 상대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행위(하킹, hacking)도 정당한 전술로 인정됐습니다. 경기 하나를 하려 해도 양 팀이 사전에 규칙부터 합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1863년 10월 26일, 런던 프리메이슨 선술집(Freemasons' Tavern)에 11개 클럽의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공통된 규칙을 만들자는 목적이었고, 이 모임에서 **잉글랜드 축구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 FA)**가 탄생했습니다. 이후 10월부터 12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추가 회의가 이어졌고, 여기서 근대 축구 최초의 공식 규칙(Laws of the Game)이 만들어졌습니다.


정강이를 걷어차는 권리를 두고 갈라서다

회의 과정에서 가장 첨예했던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손으로 공을 들고 달리는 행위를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상대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하킹을 허용할 것인가였습니다.

정강이를 걷어차는 권리를 두고 갈라서다

 

다수의 클럽은 두 행위 모두를 금지하는 쪽, 즉 다치는 사람이 줄어들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경기 쪽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블랙히스(Blackheath) 클럽을 비롯한 소수의 클럽은 이 두 요소야말로 자신들이 알던 '진짜 풋볼'의 본질이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블랙히스 대표 프랜시스 캠벨은 하킹 금지를 가리켜 "경기에 대한 모독"이라는 취지로 격렬히 반발했다고 전해집니다.

 

투표 결과 다수의 뜻대로 핸들링과 하킹 모두 금지가 결정됐고, 이 결정에 반발한 블랙히스는 회의장을 떠나 협회에서 탈퇴했습니다. 이 탈퇴가 8년 뒤인 1871년 럭비풋볼유니언(Rugby Football Union, RFU)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한 번의 투표가 '발로 하는 풋볼'과 '몸으로 부딪히는 풋볼'이라는 두 갈래 길을 만든 셈입니다.

 

그렇게 정리된 규칙으로 치러진 첫 공식 경기가 1863년 12월 19일, 바네스(Barnes)와 리치먼드(Richmond)의 맞대결이었습니다. 결과는 0대 0 무승부였습니다.


영국이 만든 단어를 영국이 버린 사연

soccer라는 단어의 운명에도 재미있는 반전이 있습니다. 영국은 20세기 내내, 특히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football과 soccer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섞어 썼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영국 언론에서 soccer라는 표현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스포츠 경제학자 스테판 시먼스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는 미국에서 북미축구리그(NASL)가 펠레와 베켄바워 같은 스타들을 영입하며 인기를 끌던 때와 겹칩니다. 미국에서 soccer라는 단어 사용이 늘어나자, 영국에서는 이 단어가 점점 '미국식 표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결국 자신들이 만든 단어임에도 점차 멀리하게 됐다는 것이 시먼스키 교수의 분석입니다. 정작 그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다른 나라가 그 단어를 즐겨 쓴다는 이유만으로 등을 돌린 셈입니다.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이 언어 습관까지 바꾼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오십보의 시선

한 경기 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일본이 만들고 한국에만 남은 한자어, 영국이 만들고 영국이 버린 영어 단어, 그리고 정강이를 걷어차는 권리를 두고 갈라선 두 스포츠. 이름 하나, 단어 하나에도 한 세기가 넘는 줄다리기의 흔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화면 앞에서 응원하는 이 경기는, 163년 전 런던의 한 선술집에서 몇몇 클럽 대표들이 손으로 공을 들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다투던 그 결론 위에 서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보는 경기는, 어쩐지 조금 더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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