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보의 일상다반사

[오십보의 일상다반사] 같은 주, 두 개의 한화 — 대전의 폭발과 여의도의 피카소

오십보 백보 2026. 6. 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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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의 일상다반사] 같은 주, 두 개의 한화 — 대전의 폭발과 여의도의 피카소


오늘은 6월 2일 화요일입니다.

 

사흘 뒤인 6월 4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별관에 퐁피두센터 한화가 공식 개관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가 스페인 말라가, 중국 상하이에 이어 세 번째 국제 거점으로 서울을 선택한 것입니다. 개관전 주제는 큐비즘. 피카소와 브라크, 레제의 작품들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500평 전시실에 걸립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한 '빛의 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옵니다.

그런데 그 개관을 이틀 앞둔 6월 1일 오전, 대전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6월 1일 대전 폭발 / 6월 4일 퐁피두센터 개관


6월 1일 오전 10시 59분, 대전 유성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56동 세척작업실 1층에서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버섯구름 모양의 연기 기둥이 치솟았고, 인근 고속도로에서도 보였습니다. 대전 곳곳에 긴급 신고가 쏟아졌습니다. 119에는 "공장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연기가 많이 난다"는 신고가 40건 이상 접수됐습니다.

반복된 비극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작업 중이던 근무자 7명 가운데 5명이 전신 화상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2명은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사고가 난 건물은 거의 외벽만 남겨진 채 내부가 사라졌습니다. 로켓추진체 폭발로 추정됩니다.

 

고용노동부는 즉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는 전담수사팀을 꾸렸습니다.

이 사업장은 처음이 아닙니다. 2018년 5월 같은 공장에서 로켓추진체 관련 작업 중 5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쳤습니다. 2019년 2월에도 추진체 관련 폭발로 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같은 공장, 비슷한 원인, 세 번의 비극입니다.


퐁피두센터 한화 — 구조는 이렇게 작동한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한화문화재단이 운영하고, 파리 퐁피두센터와 4년 파트너십 계약을 맺은 형태입니다. 퐁피두센터 입장에서는 자국에 보관 중인 소장품을 해외에 대여하고, 그에 따른 수익과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얻습니다. 한화는 세계 3대 현대미술관의 이름과 소장품을 서울 한강 앞 자사 건물에 유치했습니다.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 — 6월 4일

 

한화문화재단 이사장은 개관식 간담회에서 "소장품이 부족해 독자 미술관이 아닌 퐁피두센터와 파트너십으로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퐁피두센터 센터장은 "우리의 아름다운 별 하나가 서울에서 빛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말라가 분관은 개관 첫해 20만 명을 모았고, 이후 누적 300만 명을 넘기며 10년 연장 계약을 맺었습니다. 퐁피두센터에게 이 모델은 시설 유지와 운영 수익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브랜드를 확장하는 방식입니다. 한화에게는 세계적 미술관의 권위를 빌려 그룹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전략적 투자입니다.


아트워싱이라는 말

개관을 2주 앞둔 5월 19일, 예술인 연대 33개 단체와 시민 600여 명이 연명 성명을 내고 규탄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들이 쓴 단어가 **아트워싱(Art Washing)**입니다.

아트워싱(Art Washing) 개념도

 

아트워싱은 기업이나 기관이 예술 후원을 통해 사회적 비판이나 윤리적 책임으로부터 이미지를 세탁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환경 파괴 기업이 자연 보호 캠페인을 후원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과 같은 구조입니다. 예술의 공공성과 도덕적 권위를 빌려, 기업의 문제적 본업을 가리는 효과를 노린다는 비판입니다.

 

대표적인 해외 사례는 BP와 영국 테이트 미술관, 사클러 가문과 루브르·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계입니다. 석유 기업과 제약회사가 수십 년간 미술관 후원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쌓았지만, 기후 피해와 오피오이드 위기가 불거지자 미술관들이 후원을 거부하고 이름을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한화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계열사가 이스라엘 방산기업과 협력한다는 점에서 전쟁 산업 연루 의혹이 있다. 둘째, 그 기업이 예술이라는 공공적 언어를 통해 이미지를 재구성하려 한다면, 예술이 비판의 도구가 아니라 면죄부의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화문화재단은 "독립적 공익 운영"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십보의 시선

오십보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피카소의 작품이 한강 앞에 걸리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대전 공장에서 일하다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의 죽음도 분명히 무거운 일입니다. 두 사실 모두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오십보가 주목하는 것은, 이 두 장면이 같은 이름 아래 같은 주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문화 후원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같은 그룹 내에서 산업 현장의 반복적 인명 사고가 해결되지 않은 채, 화려한 문화 행사가 진행될 때, 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읽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트워싱이라는 말은 결국 이런 질문에서 나옵니다. 예술 후원이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가, 아니면 그 책임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가.

 

6월 4일, 63빌딩 별관이 열립니다. 오십보는 그 공간이 아름다운 동시에 무거운 이유를 오늘 기록해둡니다.

 

오십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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