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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4달러짜리 땅이 세계 최고가 부동산이 된 이야기 — 뉴암스테르담에서 뉴욕까지

오십보 백보 2026. 6. 1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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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4달러짜리 땅이 세계 최고가 부동산이 된 이야기 — 뉴암스테르담에서 뉴욕까지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이야기를 읽다가, 뉴욕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뉴욕에서 태어났는데 왜 필라델피아 이름을 달게 됐는지 — 그 브랜딩 이야기를 이안박에서 풀어줬는데, 그 글을 읽다 보니 자꾸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뉴욕이라는 이름 자체도, 사실 원래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유대인 경제 10편을 쓰면서도 내내 걸렸던 질문 하나.

 

왜 하필 뉴욕이었을까?


🗺️ 원래 이름은 뉴암스테르담이었다

"24달러짜리 땅이 세계 최고가 부동산이 된 이야기 — 뉴암스테르담에서 뉴욕까지"

1626년. 네덜란드 서인도회사 총독 피터 미누잇(Peter Minuit)이 원주민 레나페(Lenape) 족과 거래를 했습니다. 지금의 맨해튼 섬 전체를 60길더(guilder)어치 물건과 교환한 것입니다. 60길더, 오늘날 가치로 따지면 약 1,143달러. 당시 신화처럼 전해지던 "24달러"는 후대에 잘못 계산된 숫자지만, 어쨌든 터무니없이 싼 값이었음은 분명합니다.

 

네덜란드는 이 섬에 도시를 세우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 본국 수도 암스테르담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항구를 중심으로 무역 거점을 만들고, 다양한 민족이 뒤섞인 상업 도시를 만들어갔습니다. 네덜란드 사람답게 — 장사가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1664년, 영국 함대가 나타났습니다. 싸움 한 번 없이, 뉴암스테르담은 영국에 넘어갔습니다. 영국 왕 찰스 2세는 이 땅을 동생 제임스, 즉 요크 공작(Duke of York)에게 생일 선물로 줬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뉴욕(New York). 요크 공작의 도시.

 

뉴욕이라는 이름에 담긴 역사는 이렇게 단순하고도 어처구니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이름이 왕자의 생일 선물에서 나왔다는 것.

1626-1664 뉴암스테르담 타임라인: 피터 미누잇 60길더 거래 → 네덜란드 도시 건설 → 월스트리트 목책 → 1664 영국 함대 → 요크 공작 생일 선물 → 뉴욕으로 개명

 

그리고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지금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그 이름 그대로 — 네덜란드인들이 뉴암스테르담 시절에 쌓았던 **실제 목책 담벼락(Wall)**이 있던 자리입니다. 영국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1640년대에 쌓은 12피트 높이의 나무 벽. 영국군은 그 벽을 무시하고 들어왔고, 벽은 사라졌지만 이름은 살아남아 오늘날 전 세계 금융의 심장이 됐습니다.


✡️ 1654년 — 유대인들이 먼저였다

유대인들이 뉴욕에 언제 왔는지 아시나요?

1654 유대인 첫 도착: 브라질 헤시피 탈출 23명 → 총독 스타이베상트 거부 → 서인도회사 "주주 중 유대인 있다" → 정착 허용, 250년 관계 시작

 

1654년입니다. 뉴욕이 아직 뉴암스테르담이었을 때입니다. 브라질 헤시피(Recife)에서 포르투갈 종교재판을 피해 탈출한 세파르딤(Sephardic) 유대인 23명이 이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북아메리카 땅을 처음 밟은 유대인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총독 페터 스타이베상트(Peter Stuyvesant)는 이들을 쫓아내려 했습니다. "이 돈만 밝히는 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에 청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답변은 달랐습니다. "주주 중에 유대인이 있다. 들여보내라." 자본주의적 논리가 차별을 이겼습니다. 23명은 뉴암스테르담에 남았습니다.

 

이것이 뉴욕과 유대인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250년에 걸쳐 이 관계는 더 깊고 촘촘해집니다. 1880년부터 1924년까지 동유럽 박해를 피해 약 200만~250만 명의 유대인이 엘리스 섬을 통과해 뉴욕에 내렸습니다. 1910년 로어이스트사이드(Lower East Side)는 에이커당 700명 이상이 살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손수레를 끌었고, 공장에서 일했고, 백화점을 만들었습니다. 메이시스, 블루밍데일스, 삭스 피프스 애비뉴 — 이 이야기는 유대인 경제 10편에서 이미 다뤘습니다. 오늘은 그 뒤 이야기를 한 발 더 밟아봅니다.

 

맨해튼 인구 중 유대인 비율은 지금도 약 20.5%, 31만 명입니다. 뉴욕시 전체로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보다 많은 유대인이 삽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땅을 못 가졌고, 길드(상공업 조합)에서 배제됐으며, 허용된 경제 활동이 극히 제한됐습니다. 그 제약이 금융 감각을 키웠고, 뉴욕이라는 새 땅에서 폭발했습니다.


🏙️ 그래서 왜 뉴욕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이 됐나

지금 맨해튼은 어떤 가격표를 달고 있을까요.

맨해튼 부동산 가격 인포그래픽: 면적 58.8㎢, 중위가 $1.4M(19억 원), 센트럴파크 타워 펜트하우스 $238M, $/sqft $1,400, 지리적 독점성(섬)

 

맨해튼 면적은 약 22.7제곱마일(58.8㎢). 서울 강남구보다 조금 작습니다. 그런데 이 섬의 주택 중위 매매가는 2026년 기준 **약 140만 달러(약 19억 원)**입니다(Redfin). 콘도 평균 제곱피트당 가격은 약 1,400달러(약 200만 원/㎡) 수준이며, 센트럴파크 타워 펜트하우스는 역대 최고가인 약 2억 3,800만 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세 가지 이유가 겹쳤습니다.

세 가지 이유: ① 지리적 독점(섬, 공급 제한) ② 금융 집중(NYSE $44T 시총, 1792 버튼우드 협정) ③ 이민자 에너지(유대인·아일랜드·이탈리아·중국), NYC GDP $2T

 

첫째, 지리적 독점성. 맨해튼은 섬입니다. 더 넓어질 수 없습니다. 공급이 영원히 제한된 땅이라는 뜻입니다. 네덜란드가 이 좁은 항구 섬을 택한 것부터가 무역 천재의 선택이었습니다. 허드슨 강과 대서양을 동시에 잇는 위치.

 

둘째, 금융의 집중. 1792년 5월 17일, 24명의 중개인들이 월스트리트 버튼우드 나무 아래 모여 서명한 것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시초였습니다. 지금 NYSE 시가총액은 44조 달러(2026년 기준)로 전 세계 1위입니다. 세계 최대 금융시장이 이 섬에 있으니, 세계 최대 기업과 자본이 이 섬에 모이고, 그 사람들이 이 섬에 살고 싶어 합니다.

 

셋째, 이민자들이 만든 에너지. 유대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중국인, 카리브해인 — 각자 다른 언어와 문화를 들고 왔지만, 뉴욕은 이들을 통합시키는 대신 섞이게 했습니다. 그 충돌과 융합이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냈습니다. 패션, 금융, 예술, 음식 — 뉴욕이 전 세계 트렌드의 발원지인 건 우연이 아닙니다.

 

뉴욕시 GDP는 2025년 기준 약 2조 달러. 미국 전체 GDP의 약 9%를 이 한 도시가 만들어냅니다. 한 도시의 경제 규모가 캐나다 전체와 맞먹습니다.

 

1626년 60길더로 샀던 섬이, 400년 후 어떻게 됐는지를 생각하면 — 이것이 가장 극적인 부동산 이야기이자, 가장 잔인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레나페 족은 그 땅에서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오십보의 한 줄 메모

뉴욕은 네덜란드가 설계하고, 영국이 이름 붙이고, 유대인이 금융을 깔고, 이민자들이 채웠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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