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 사람들

[프롤로그] 7월 9일, 두 개의 독립 —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가 그은 선

오십보 백보 2026. 7. 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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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7월 9일, 두 개의 독립 —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가 그은 선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카테고리를 하나 열려고 합니다. 이름은 "선을 긋는 사람들"입니다. 지도 위에 그어진 선 하나가 어떻게 한 나라의 운명과 경제,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는지, 앞으로 국경의 역사부터 대륙별 나라 하나하나의 이야기까지 꾸준히 다뤄보려 합니다.

7월 9일 이중 타임라인

 

이 시리즈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 선은 누가, 왜, 어떻게 그었는가 — 그리고 그 선 때문에 지금도 누군가 영향받고 있는가."

 

그 첫 이야기를 오늘 날짜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달력에 두 가지 사건이 겹쳐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1816년 7월 9일 —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2002년 7월 9일 — 아프리카 연합(AU)이 남아공 더반에서 공식 출범했습니다.

 

두 사건은 186년의 거리를 두고 같은 날짜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르면서도, 묘하게 같은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1816년 투쿠만 — 선을 받아들인 독립

1816년 투쿠만 독립 선언

'누에베 데 훌리오(Nueve de Julio, 7월 9일)'. 아르헨티나에서 7월 9일은 그냥 날짜가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the 4th of July'를 고유명사처럼 쓰듯, 아르헨티나인들은 이 날짜 자체가 독립을 뜻합니다.

 

1816년 7월 9일, 북부 도시 투쿠만에 모인 33명의 대의원들이 스페인 왕실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독립을 선언한 그 땅의 경계선은 누가 그었을까요. 스페인이 그었습니다. 식민 지배 300년 동안 스페인이 편의상 나눈 행정 구역이 독립 이후 그대로 국경이 됐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경계선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협의해서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 안에는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민자의 나라 — 지워진 사람들

 

아르헨티나는 흔히 '이민자의 나라'라고 불립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에서 수백만 명이 건너왔습니다. 이탈리아계, 스페인계, 독일계, 유대계, 아랍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한때 "남미의 파리"라 불릴 만큼 번성했고, 메시의 이름 리오넬도 그 뿌리를 추적하면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이 이민자의 나라 이야기에는 자주 빠지는 장(章)이 있습니다. 독립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는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1870~1880년대, '사막의 정복(Conquista del Desierto)'이라는 이름의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파타고니아와 팜파스 지역에 살던 마푸체, 테우엘체 등 원주민들을 몰아낸 이 작전으로 수만 명이 살던 땅에서 쫓겨났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빈 땅에 유럽 이민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아르헨티나 사막의 정복

 

누군가에게 '이민자의 나라'가 되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그 땅에서 지워져야 했습니다. 1816년의 독립은 스페인으로부터의 해방이었지만, 그 땅의 원래 주인들에게는 다른 지배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연합의 탄생 — 식민지 선을 안고 가야 했던 나라들

1884 베를린 회의 아프리카 분할

2002년 7월 9일, 남아공 더반.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 AU)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전신은 1963년 세워진 아프리카 단결기구(OAU)였습니다. 막 독립을 이룬 32개 아프리카 국가들이 아디스아바바에 모여 서명했습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하나로 연대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OAU는 처음부터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국경선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1884~1885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열강들이 나눠 가졌습니다. 자를 대고, 경도와 위도를 따라 선을 그었습니다. 그 선이 어떤 부족을 둘로 나누는지, 어떤 언어권을 갈라놓는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독립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식민지 시대 그어진 선을 그대로 국경으로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다시 그으면서 내전을 각오하든가. OAU는 현실적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있는 국경을 그대로 인정한다." 경계선을 다시 긋는 것보다 그 선 안에서 연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프리카에는 55개 국가가 생겼습니다. 같은 민족이 두 나라로 나뉘고, 서로 다른 민족이 한 나라 안에 강제로 묶였습니다. 르완다, 나이지리아, 수단,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아프리카의 수많은 분쟁은 이 잘못 그어진 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OAU에서 AU로 — 39년 만의 업그레이드

OAU→AU 진화 비교

OAU가 AU로 바뀐 것은 단순한 이름 변경이 아니었습니다. OAU의 핵심 원칙은 '내정 불간섭'이었습니다. 어떤 나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다른 나라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독재자들에게 방패가 됐습니다. 르완다에서 100일 만에 약 80만 명이 학살될 때, OAU는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2002년 출범한 AU는 이 원칙을 바꿨습니다. '반응할 의무(Responsibility to Protect)' — 회원국이 집단학살·전쟁범죄·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를 때 AU가 개입할 수 있다는 조항을 헌장에 넣었습니다. 55개국, 14억 명 이상의 인구를 아우르는 대륙 연합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AU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공통 통화도, 공통 군대도 없습니다. 회원국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합니다. 하지만 OAU가 39년 동안 했던 것들 —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 나미비아 독립 지원, 대륙 내 외교 채널 — 이 없었다면 AU도 없었을 것입니다.

 

두 독립이 남긴 질문

선을 긋는 권력과 밀려난 사람들

아르헨티나의 1816년 독립과 아프리카 연합의 2002년 출범. 두 사건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같은 고통을 드러냅니다.

 

"선을 긋는 것은 항상 누군가의 몫이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스페인이 그은 선 안에서, 이후에는 독립 아르헨티나가 그은 선 밖에서 쫓겨났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베를린에 모인 유럽인들이 그은 선 안에서, 지금도 그 선과 싸우며 살고 있습니다. 선을 긋는 행위는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의 것이었고, 그 선이 얼마나 잘못 그어졌는지는 선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먼저 알았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선들을 하나씩 따라가 보려 합니다. 첫 무대는 카리브해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그리고 이 선을 만든 1884년 베를린 회의, 250개 부족을 하나로 묶은 나이지리아로 이어집니다.

 

오늘의 메시

오늘 월드컵 무대에서 메시가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습니다. 1816년 7월 9일 독립을 선언한 나라의 유니폼을요. 그 유니폼의 하늘색과 흰색은 리오데라플라타강의 색에서 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강 옆에 살던 원주민들의 이야기, 유럽 이민자들이 만들어낸 나라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민자의 후손들이 세계를 향해 차고 있는 공의 이야기가 모두 같은 강가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역사는 날짜 위에 쌓입니다. 7월 9일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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