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의 경제학 3편] 렌틸·병아리콩 — 수천 년 생존 식품이 '슈퍼푸드'가 된 날
[콩의 경제학 3편] 렌틸·병아리콩 — 수천 년 생존 식품이 '슈퍼푸드'가 된 날
요즘 동네 마트 샐러드 코너에 가면 낯선 이름들이 눈에 띕니다. '렌틸콩 샐러드', '병아리콩 후무스', '단백질 스낵 — 로스티드 치크피'. 영양성분표 옆엔 어김없이 이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슈퍼푸드. 고단백. 지속가능한 미래 식품."
그런데 잠깐, 이 '신상' 슈퍼푸드들이 처음 인류 밥상에 오른 게 언제였을까요.
렌틸콩은 서남아시아, 특히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초기 농경과 함께 재배화됐습니다. 학술 자료들은 대체로 약 8,000~10,000년 전부터 재배됐다고 설명합니다. 병아리콩 역시 비옥한 초승달 지대, 오늘날 터키 남동부와 상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주요 기원지로 보는데, 재배화 시점은 약 7,500~10,000년 전 정도로 넓게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콩들의 재배 역사는 문자 기록보다 오래됐고, 이후 수메르 토판, 고대 이집트 무덤 벽화, 인도 베다 문헌, 구약성경 속 에서(Esau)의 이야기(창세기 25장 34절, "lentil stew" — 렌틸콩 스튜) 등 문자 기록 시대의 문헌 속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오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수천 년 된 오래된 주식이, 21세기에 왜 '미래 단백질'이라는 프리미엄 상품이 됐는가.
이것은 단순한 식품 트렌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어가 어떻게 시장을 만드는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누가 남의 음식에 이름을 붙여 파는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편에서 Legume이라는 단어가 콩과 식물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냈다면, 오늘은 그 언어의 힘이 어떻게 오래된 생존 식품을 프리미엄 신상으로 탈바꿈시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비옥한 초승달에서 시작된 두 콩의 역사
렌틸콩(Lens culinaris)과 병아리콩(Cicer arietinum)의 고향은 같은 지역에서 출발합니다. 지금의 터키 남동부·시리아·이스라엘·요르단을 아우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입니다. 인류가 밀·보리와 함께 가장 먼저 재배화한 작물군, 이른바 신석기 창시자 작물(Neolithic founder crops) 안에 렌틸콩이 포함됩니다.

렌틸콩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빠르고, 가볍고, 오래 갑니다. 품종과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80~100일이면 수확이 가능했고, 건조 상태에서 수년을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단백질 함량은 건조 중량의 약 25% 안팎으로, 고기가 없어도 인체 필수 아미노산을 상당 부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유목과 이동이 일상이던 시대에 렌틸콩은 최적의 식량이었습니다.
병아리콩은 렌틸콩보다 열성적인 여행자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해 약 6,000년 전(기원전 4,000년경) 인도 아대륙 방향으로 확산됐고, 지중해권으로는 약 5,500년 전(기원전 3,500년경), 에티오피아로는 약 3,500년 전(기원전 1,500년경) 각각 다른 시점에 퍼져나갔습니다. 오늘날 인도는 세계 병아리콩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인데, 그 역사의 시작이 이 오래된 이동에서 비롯됩니다.
이 두 콩이 유럽에서 한동안 '가난의 음식'으로 취급된 것과 달리, 인도와 중동에서는 한 번도 하급 식품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종교와 문명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달(Dal)과 후무스 — 두 문명이 콩을 요리하는 방법
같은 콩과 식물이 두 개의 전혀 다른 요리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그 대표가 인도의 달(Dal)과 중동의 후무스(Hummus)입니다.
인도의 달
인도에서 '달(Dal)'은 단순히 요리 이름이 아닙니다. 콩류를 반으로 쪼개 껍질을 벗긴 것, 또는 그것으로 만든 수프 형태의 요리 전체를 가리키는 범주어입니다. 렌틸콩 달, 병아리콩 달(차나 달), 녹두 달(무그 달) 등 수십 가지 변형이 존재합니다.

인도에서 콩류(pulses)는 국가 식량 안보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인도의 콩류 생산량은 2021/22년 약 2,730만 톤, 2022/23년 약 2,610만 톤, 2023/24년 약 2,340만 톤으로 세계 최대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계속 감소 추세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인도는 콩류를 꾸준히 수입합니다. 생산량은 크지만 인구 규모와 달 중심의 식문화 때문에 소비량이 그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인도 채식주의 문화에서 달은 단백질 공급의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힌두교·자이나교 전통에서 육식을 제한하는 인구만 수억 명에 달하는데, 그들의 단백질 섭취를 오랫동안 떠받쳐온 것이 이 달 요리입니다. 달은 '가난한 자의 고기(poor man's meat)'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인도 안에서 그 표현은 다른 나라에서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경제적 이유가 아닌 종교적·문화적 선택으로 달을 먹는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후무스 — 분쟁 중인 음식
중동에서 후무스(Hummus)는 삶은 병아리콩에 타히니(참깨 페이스트)·올리브유·레몬·마늘을 넣고 간 것입니다. 아랍어로 '후무스'는 그냥 '병아리콩'을 뜻합니다. 요리 이름이 재료 이름과 같다는 것 자체가, 이 음식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지역 식문화의 중심에 있었는지를 말해줍니다.

후무스의 기원을 두고 중동 각국이 자국의 전통 음식이라고 주장합니다. 레바논은 2008년 무렵 이스라엘이 후무스를 자국 음식처럼 마케팅한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EU에 후무스를 레바논 음식으로 인정해 달라는 시도도 있었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이집트·시리아·팔레스타인도 모두 '우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논쟁은 단순한 음식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이 음식이 얼마나 깊이 각 문화의 정체성과 얽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숫자로 보는 렌틸·병아리콩 시장
이 오래된 음식들이 오늘날 얼마나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수치는 공공 통계가 아니라 시장조사기관별 추정·전망치이며,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병아리콩 세계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160억 달러(약 23조 원)로 평가되며, 2033년까지 약 296억 달러(약 43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연평균 성장률은 약 7% 안팎입니다.
렌틸콩 세계 생산량은 2024/25년 기준 약 660만 톤으로 전년 대비 15% 늘었습니다. 캐나다가 세계 1위 생산국이자 최대 수출국인 것은 맞지만, 2024/25년 생산량 기준으로 캐나다 비중은 세계 생산량의 약 36~37%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인도가 최대 소비국이지만 생산은 캐나다가 앞서는 이 구도는, 2편에서 다룬 대두 시장의 "원산지는 아시아, 생산 패권은 아메리카"라는 구조와 묘하게 겹칩니다.

후무스 시장은 2025년 기준 전 세계 약 47억 달러(약 6조 8,000억 원)이며, 2034년까지 약 125억 달러(약 18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성장률은 병아리콩 시장 전체보다 빠른 편입니다. 미국 후무스 시장만 따로 보면 조사기관에 따라 수치 차이가 있는데, 한 기관은 2025년 기준 약 10억 8,000만 달러 규모로, 2032년까지 약 18억 6,0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합니다.
사브라(Sabra) — 후무스를 미국 냉장고에 집어넣은 기업
후무스가 미국 주류 시장에 진입한 데는 한 기업의 역할이 컸습니다. 사브라(Sabra)입니다.
1986년 뉴욕에서 설립된 사브라는 이스라엘 식품기업 스트라우스 그룹(Strauss Group)과 미국 펩시코(PepsiCo)의 합작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2008년부터 두 회사가 50대 50으로 운영해왔고, 펩시코의 유통망과 냉장 물류 시스템이 후무스를 대형마트 냉장 코너에 올려놨습니다.

사브라는 2021년 초 미국 후무스 시장의 6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이후 하락해 2024년 기준 약 37% 수준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이 하락의 원인은 한 가지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확인 가능한 요인으로는 2021년 살모넬라 관련 리콜, 생산 공장의 일시적 가동 중단, 대형 유통업체들의 공급처 다변화가 꼽힙니다. 가자 전쟁 이후의 불매운동도 변수로 거론되지만, 시장점유율 하락의 확정적 원인으로 보기에는 근거가 약합니다. 결국 스트라우스 그룹은 2024년 말 자사의 지분 전체를 펩시코에 매각했고(언론 보도 기준 약 2억 4,400만 달러 규모), 사브라는 현재 펩시코 자회사가 됐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름입니다. '사브라(Sabra)'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유대인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선인장 열매의 히브리어 이름이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 음식의 대명사격인 후무스를, 이스라엘 정체성을 내세운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서 팔아온 셈입니다.
'슈퍼푸드'라는 언어의 경제학
이제 핵심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오랫동안 인도·중동에서 먹어온 음식이, 왜 21세기 서구에서 '슈퍼푸드'라는 프리미엄 언어를 달고 팔리는가.
첫 번째 이유는 식물성 단백질 시장의 성장입니다. 한 시장조사기관 추산으로 전 세계 식물성 단백질 시장 규모는 2026년 기준 약 243억 달러(약 35조 원)이며, 2036년까지 594억 달러(약 86조 원)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이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은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 변화와 육류 소비 감소 트렌드입니다. 콩류는 단백질 단위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쇠고기보다 뚜렷하게 낮다는 분석이 여러 자료에서 나오는데, 정확한 배율은 산정 기준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수십 배 낮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지속가능한 단백질'이라는 서사가 오래된 콩들을 미래 식품으로 재포지셔닝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낯섦'의 프리미엄입니다. 인도·중동에서 렌틸콩과 병아리콩은 매일 먹는 평범한 음식입니다. 그러나 서구 소비자에게는 '이국적인 슈퍼푸드'입니다. 낯선 것에는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슈퍼푸드'라는 단어 자체의 마케팅 파워입니다. 1편에서 언어가 시장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superfood는 영양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된 용어가 아닙니다. EU에서는 이런 표현이 특정 건강 효과를 암시할 경우 영양·건강강조표시 규제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단어 하나가 소비자 인식을 바꾸고, 진열대 위치를 바꾸고, 가격을 바꿉니다. 렌틸콩이 '슈퍼푸드'가 된 것은 렌틸콩이 변한 것이 아니라 언어가 바뀐 것입니다.
인도의 시선 — 생존 식품이 수출 전략 자원이 된 아이러니
인도 입장에서 이 트렌드는 복잡한 감정을 낳습니다.

인도는 세계 병아리콩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이지만, 국내 소비도 워낙 많아 오히려 렌틸콩을 꾸준히 수입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특히 렌틸콩 수입에서 캐나다 비중이 커서, 2023년 인도-캐나다 외교 갈등이 불거졌을 때 일부 인도 바이어들이 구매를 늦추는 등 심리적 위축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공식적인 수입 제한으로 이어졌다는 근거는 약하고, 실제로 그해 인도는 캐나다산 렌틸콩을 상당량 계속 수입했습니다. 당시의 가격 상승은 국내 생산 감소, 전체 콩류 공급 불안, 수입 의존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한편 인도는 오랫동안 달과 병아리콩을 먹어왔지만, 이것이 '슈퍼푸드'로 서구에서 재브랜딩되어 고가에 팔리는 과정에서 인도 생산자가 가져가는 부가가치는 크지 않습니다. 원료는 인도에서 나오지만, 브랜드와 유통 마진은 서구 기업이 가져갑니다. 2편에서 다뤘던 브라질 세하도의 대두 생산에서 가공·유통 이익이 서구 곡물 기업들에게 돌아가는 구조와 본질적으로 같은 패턴이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한국 시장 — 병아리콩의 조용한 침투
한국에서 렌틸콩과 병아리콩은 오랫동안 '외국에서 온 낯선 콩'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 다이어트 커뮤니티와 건강 식품 시장에서 병아리콩·렌틸콩 밥짓기가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했고, 2020년대 들어 편의점 샐러드와 가정간편식(HMR) 시장에서 두 콩이 빠르게 자리잡았습니다. 후무스는 이태원 등 외식 밀집 지역의 중동·지중해 식당을 통해 소비자와 친숙해진 뒤 마트 냉장 코너로 진입하는 중입니다.
한국 소비자에게 이 콩들이 어필한 것은 '저칼로리', '고단백', '글루텐프리'라는 세 단어 덕분입니다. 인도에서 오랫동안 먹어왔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 단어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들어온 것입니다. 언어가 시장을 만든다는 1편의 명제가 한국 시장에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오십보의 정리
1편에서 Legume이라는 라틴어가 어떻게 다양한 콩과 식물들을 하나의 시장 카테고리로 묶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3편의 결론은 그 반대 방향입니다. 같은 콩이 어떤 언어로 불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장 가치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인도 농촌에서 '달(Dal)'이라 불리면 하루 세끼 밥상의 기본이고, 캐나다 항구에서 '레드 렌틸(Red Lentil)'이라 불리면 수출 원자재이고, 서울 마트에서 '슈퍼푸드 렌틸 샐러드'라 불리면 프리미엄 건강식품입니다. 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언어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결정하는 힘은 언제나 생산자보다 유통자 쪽에 있었습니다. 오래전 메소포타미아의 농부들이 렌틸콩을 처음 재배했을 때, 21세기에 그것이 냉장 샐러드로 팔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콩은 살아남았고, 새 이름을 얻었고, 새 시장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신상 슈퍼푸드'라 부르는 것의 진짜 나이를 알게 되면, 마케팅과 역사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콩 시리즈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동아시아에서만 유독 "단맛 콩"으로 자리잡은 팥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 콩의 경제학 시리즈 그리고 같이 읽어볼만한 글
- [1편] Bean과 Pea는 왜 다른 이름을 가졌나
- [2편] 대두, 지구 반대편 대농장이 된 이야기
- [일상다반사] 7월 22일 — 완두콩 수도사가 뇌과학 시대를 열었다
- 쫀쿠의 밥상 25편_콩나물 vs 숙주나물 — 같은 나물인 것 같지만, 하나는 온 세계가 먹고 하나는 한국이 거의 혼자 먹어
- [밥상] 쫀쿠의 밥상 이야기 4편 — 된장과 미소, 같은 콩이 다른 문화를 만든 이유
- [단어의 서재 20편] Tea(티/차) — 찻잎 한 장이 세상을 두 갈래 언어로 나눈 날
태그
#콩의경제학 #렌틸콩 #병아리콩 #달요리 #후무스 #인도음식 #중동음식 #식물성단백질 #슈퍼푸드경제학 #사브라 #펩시코 #메소포타미아 #오십보 #시장의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