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의 경제학 4편] 정부가 콜라 캔에 세금을 매기면 무슨 일이 생길까 — 설탕세의 역설
[콜라의 경제학 4편] 정부가 콜라 캔에 세금을 매기면 무슨 일이 생길까 — 설탕세의 역설
들어가며 — 콜라에 세금을 붙인다는 발상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3편에서 코카콜라가 산타와 북극곰이라는 문화 자산으로 브랜드를 지킨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브랜드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정부 입장에서 한 가지 고민이 생깁니다.
"건강에 나쁜 음료를 이렇게 많이 마시는데, 그냥 두어도 될까?"

이 고민에서 나온 정책이 **설탕세(Sugar Tax)**입니다. 2018년 영국이 본격 도입하고, 멕시코·헝가리·필리핀 등이 앞서 시행했으며, 2026년 현재 전 세계 90개국 이상에서 관련 세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세금으로 사람들이 덜 마시게 할 수 있을까요. 코카콜라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그리고 이 세금은 정말 의도한 대로 작동했을까요.
답이 꽤 흥미롭습니다.
◼ 1부 — 왜 설탕에 세금을 매기는가: 죄악세의 경제학
설탕세는 경제학에서 **'죄악세(Sin Tax)'**의 일종입니다. 담배·주류처럼 건강에 해롭다고 판단되는 소비에 세금을 붙여 소비를 줄이는 정책입니다.
경제학적으로는 **외부 비용(Externality)**의 내재화라고 부릅니다. 콜라를 많이 마셔 당뇨·비만이 늘어나면 그 의료비를 사회 전체(세금)가 부담합니다. 개인 소비의 나쁜 결과가 나 혼자가 아닌 사회 전체에 전가되는 것입니다. 설탕세는 그 외부 비용을 음료 가격에 미리 반영시키는 도구입니다.
WHO는 꾸준히 각국 정부에 설탕세 도입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 2부 — 영국의 SDIL: 세금이 예상보다 적게 걷힌 이유
영국은 2018년 **SDIL(Soft Drinks Industry Levy, 청량음료 산업 부담금)**을 도입했습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당도 기준 세율
| 100ml당 8g 이상 | 리터당 24펜스 |
| 100ml당 5~8g | 리터당 18펜스 |
| 5g 미만 | 면세 |
영국 재무부는 이 세금으로 연간 약 5억 파운드 세수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도입 첫 6개월 만에 예상보다 36% 적은 세수가 걷혔습니다.

이유가 역설적입니다. 제조사들이 세금을 내는 대신 레시피를 먼저 바꿔버렸기 때문입니다.
판타, 리베나, 이른 브루(Irn-Bru), 루코자드(Lucozade) 등이 당 함량을 5g 이하로 낮춰 세금 부과 구간 자체를 피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영국 청량음료 브랜드의 50% 이상이 100ml당 5g 미만으로 레시피를 변경했습니다.
그 결과 세수는 줄었지만, 정책 목표는 달성됐습니다.
2017년 대비 2024년 기준, 영국의 고당 음료 판매는 약 15% 감소했고 제로슈거 음료 판매는 약 35% 증가했습니다.
세금이 소비자를 바꾼 것이 아니라, 세금 위협이 제조사를 바꾸고, 바뀐 제품이 소비를 바꾼 것입니다.
◼ 3부 — 코카콜라의 대응: 레시피를 바꾸지 않은 이유
영국에서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코카콜라 클래식은 레시피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대신 선택을 소비자에게 넘겼습니다.
코카콜라가 선택한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포트폴리오 확장. 코카콜라 제로, 다이어트 코크, 코크 제로 슈거 라인을 적극 강화했습니다. "고당 콜라 가격이 올라가면, 제로 라인으로 옮겨오세요"라는 전략입니다.
둘째, 패키징 축소. 일부 고당 제품에서 캔 크기를 줄였습니다. 같은 가격에 더 작은 용량을 파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당 섭취를 줄이는 전략이었습니다.
셋째, 클래식 레시피 사수. 1985년 뉴코크 실패의 교훈이 여기서도 작동했습니다. 오리지널 코카콜라 클래식의 맛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140년의 브랜드 자산이 담긴 레시피는 세금보다 강합니다.
이 전략의 결과를 보면 코카콜라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고당 콜라 판매는 영향을 받았지만, 제로 라인이 그 이상으로 성장하면서 코카콜라 전체 수익은 오히려 개선됐습니다.
◼ 4부 — 멕시코: 효과는 있었는데, 공정한 세금이었나
멕시코는 영국보다 4년 앞선 2014년 설탕세를 도입했습니다. 리터당 MX$1 페소 과세였습니다.

초기 연구들은 도입 첫 2년간 구매량이 유의미하게 줄었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세계보건기구도 멕시코 사례를 성공 모델로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비판도 있었습니다.
세수가 건강 목적 사업이 아닌 정부 일반 재정으로 흘러들어갔고, 가격 인상의 부담이 저소득 가구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설탕세가 역진적이라는 비판입니다. 저소득층은 소득 대비 탄산음료 지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같은 세금을 내도 체감 부담이 더 큽니다.
그럼에도 멕시코는 2026년 1월 1일부터 세율을 리터당 약 MX$3.08(약 0.17달러)로 대폭 인상했습니다. 추가 세수로 약 MX$410억(약 23억 달러)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존 설탕 함유 음료뿐 아니라, 새로 비칼로리 감미료 음료에도 별도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제로슈거 음료로의 단순 이동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인식이 반영된 정책입니다.
◼ 5부 — 설탕세가 작동하는 방식과 한계
지금까지 도입된 설탕세 사례들을 종합하면, 이런 패턴이 보입니다.

효과가 있었던 것: 소비자 행동이 변했습니다. 고당 음료에서 저당·무당 음료로 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조사들이 레시피를 바꿨습니다. 정부가 강제하지 않아도 시장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효과가 제한됐던 것: 세수 목표는 종종 빗나갔습니다. 제조사가 먼저 대응하면 세금 자체가 줄어드니까요.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소비자는 가격이 올라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저소득층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경제학에서 **가격탄력성(Price Elastic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얼마나 줄어드는가"를 보는 지표입니다.
영국 연구에 따르면 고당 음료의 가격탄력성은 약 -0.6 수준입니다. 가격이 10% 오르면 소비가 6%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어느 정도 줄지만, 가격에 완전히 민감하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브랜드 충성도·습관·대안 부재가 탄력성을 낮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2편에서 다뤘던 '펩시 패러독스'를 기억하시나요? 사람은 맛이 아니라 기억으로 콜라를 삽니다. 그 기억의 힘이 설탕세에도 저항하는 겁니다.
◼ 6부 — 한국은 어디에 있나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당류 과잉 섭취와 비만·당뇨 증가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보건복지부와 학계에서 설탕세 도입 검토가 이뤄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2026년 현재까지 국내에는 탄산음료에 특정된 설탕세가 도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대신 식품 표시 강화, 고당 음료 광고 규제 등 간접적 접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설탕세 도입 시 예상되는 논점은 몇 가지입니다. 한국의 탄산음료 소비 구조, 제조사의 레시피 변경 여력, 저소득층 부담의 역진성, 그리고 무엇보다 "설탕세로 줄인 소비가 실제로 건강 개선으로 이어지는가"라는 근본 질문입니다.
마무리 — 정부도 콜라를 이기지 못했다
설탕세의 역사는 흥미로운 교훈을 남깁니다.
정부가 세금으로 소비를 바꾸려 했더니, 기업이 세금보다 빠르게 제품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소비자는 그 사이에서 조금씩 저당 음료로 옮겨갔습니다.
세금이 소비자를 직접 움직인 것이 아니라, 세금이 기업을 움직이고, 기업이 제품을 바꾸고, 그 제품이 시장을 바꾼 것입니다. 정책이 원한 결과를 얻었지만, 원한 경로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코카콜라는 이 모든 과정에서 오리지널 클래식 레시피를 지켰습니다. 정부도, 소비자도, 설탕세도 그 한 캔의 레시피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옆에 제로 라인이 하나 더 생겼을 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코카콜라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AI와 디지털 마케팅 시대에 140년 된 브랜드가 어떻게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고 있는지를 다룹니다.
[콜라의 경제학 3편] 산타도, 북극곰도 코카콜라가 만든 게 아니다
[콜라의 경제학 2편] 맛이 아니라 기억이 이겼다 — 뇌과학으로 보는 브랜드 전쟁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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