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식탁

[옥수수의 경제학 6편]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 — 종자 전쟁과 식량 주권의 경제학

오십보 백보 2026. 7. 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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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의 경제학 6편]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 — 종자 전쟁과 식량 주권의 경제학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옥수수 경제학 시리즈가 어느덧 여섯 번째입니다. 에탄올로 주유소에 들어가고, 액상과당이 되어 콜라 캔 속으로 들어가고, 사료를 거쳐 삼겹살이 됐습니다. 오늘은 그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돌아갑니다. 씨앗입니다.

씨앗의 소유권 — 전통 vs 현대 특허

 

그런데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씨앗이 어디서 왔는가'가 아닙니다. '씨앗이 누구의 것인가'입니다.


◼ 수천 년의 관행이 흔들리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것은 약 1만 년 전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농부들이 해온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가을에 수확한 씨앗 중 가장 실하고 건강한 것을 골라 다음 해 봄을 위해 보관하는 것이었습니다. 씨앗은 다음 해의 생명이자, 삶의 연속성이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를 기점으로 이 수천 년의 관행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 유전자변형 작물의 등장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변형생물체)는 1980년대 실험실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1996년 몬산토(Monsanto)의 '라운드업 레디(Roundup Ready)' 대두가 상업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농업 현장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옥수수 분야에서도 같은 해 GMO 품종의 상업 재배가 시작됐습니다.

 

GMO 옥수수의 핵심 기술은 두 가지입니다.

MO 옥수수 2가지 핵심 기술 — 생산성 vs 의존성

 

첫째는 **제초제 저항성(Herbicide Tolerance)**입니다. 특정 제초제를 밭에 뿌려도 옥수수만 살아남고 잡초만 죽도록 만든 기술입니다. 다만 이 기술은 살충제 사용량을 줄이는 대신, 특정 제초제(글리포세이트 계열)에 대한 의존을 구조적으로 높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둘째는 **해충 저항성(Bt 옥수수)**입니다. 토양 세균인 바실루스 투린지엔시스(Bacillus thuringiensis)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삽입해, 해충이 옥수수를 먹으면 스스로 피해를 입도록 만든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살충제 사용량 절감에 실질적인 효과를 냈습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GMO 재배면적은 약 2억 헥타르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대두, 옥수수, 면화, 카놀라 4가지 작물이 전체 GMO 재배면적의 99% 이상을 차지합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90% 이상이 이미 GMO입니다.


◼ 씨앗에 특허를 달다 — 게임이 바뀌다

기술 자체보다 더 큰 변화는 특허에서 왔습니다.

 

몬산토는 자신들이 개발한 GMO 종자에 특허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자를 구입한 농부들에게 계약서를 쓰게 했습니다. 내용은 하나였습니다. "이 씨앗으로 수확한 작물에서 씨앗을 다시 받아 재사용하지 않겠다." 매년 새로운 씨앗을 구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수천 년 동안 당연하게 해온 씨앗 저장이 계약 위반이자 특허 침해가 된 것입니다.


◼ 캐나다 농부 vs. 세계 최대 종자기업

법정 장면 — 슈마이저 vs 몬산토 (다윗과 골리앗)

1998년,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의 농부 **퍼시 슈마이저(Percy Schmeiser)**의 카놀라 밭에서 몬산토의 GMO 카놀라가 발견됐습니다. 슈마이저는 몬산토의 씨앗을 구입한 적이 없다고 했고, 이웃 농장에서 자연적으로 유입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몬산토는 특허 침해로 고소했습니다.

 

의도적 재파종인지 자연 유입인지를 두고 법정 논쟁이 벌어졌고, 수년간의 싸움 끝에 캐나다 대법원은 2004년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특허 침해는 맞지만, 슈마이저가 경제적 이익을 얻지 않았으므로 배상금은 없다."

 

슈마이저는 배상금은 면했지만, 자신이 수십 년간 개량해온 씨앗의 독자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그는 GMO와 종자 특허에 반대하는 세계적인 운동가가 됐고, 2007년 대안 노벨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습니다.

퍼시 슈마이저 사건 — 씨앗과 특허의 충돌

 

이 사건이 상징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바람도, 벌도, 새도 계약서를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이동이 법적 책임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이 수백만 농부들에게 불안감을 남겼습니다.


◼ 세 기업이 세계 종자 시장을 재편하다

2010년대 후반, 불과 3~4년 사이에 세계 농업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인수합병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3대 거대 기업이 세계 종자 시장을 재편하다

 

2018년 독일의 **바이엘(Bayer)**이 몬산토를 약 **630억 달러(약 67조 원)**에 인수했습니다. 같은 시기 다우케미칼과 듀폰이 합병해 **코르테바(Corteva)**를 탄생시켰고, 중국 국유기업 켐차이나는 스위스의 **신젠타(Syngenta)**를 인수했습니다.

 

기업 본사 주요 브랜드

바이엘 (구 몬산토) 독일 라운드업 레디, Bt 옥수수
코르테바 미국 파이오니어, 에이테크
신젠타 스위스 (중국 소유) NK 옥수수

2024년 기준 글로벌 상업용 종자 시장은 약 600억 달러(약 80조 원) 규모로 추정됩니다. 이 세 기업을 포함한 상위 소수 기업들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국 종자 산업 점유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주요 채소 품종 씨앗 상당수를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GMO는 정말 나쁜 것인가

이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GMO 자체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현재 상당한 과학적 합의가 이뤄져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국립과학원(NAS), 유럽식품안전청(EFSA) 모두 "현재 승인된 GMO 식품에서 확인된 건강 위험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GMO 기술이 없었다면 지금 수십억 명을 먹여 살리는 식량 생산량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농부들이 수확 안정성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스스로 GMO 종자를 선택합니다. 기술 자체가 농업 현장에 가져온 효율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황금쌀(Golden Rice)은 이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베타카로틴 합성 유전자를 이식해 비타민A 결핍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개발된 GMO 품종입니다. 개발 후 20년 넘게 규제에 묶여 있다가 2021년 필리핀이 세계 최초로 상업 재배를 승인했습니다.

 

문제는 GMO 기술 그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기술이 소수 기업에 의해 독점되고, 특허와 계약을 통해 농부들의 선택지가 좁아지는 구조입니다.


◼ 식량 주권이라는 말의 무게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은 각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의 식량 시스템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합니다.

식량 주권의 경제학 — 씨앗 특허가 밥상을 결정한다

 

씨앗 특허 구조가 고착되면, 특정 기업이 종자 공급을 제한하거나 가격을 올릴 때 농부들의 선택지가 줄어듭니다. 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한 나라의 식량 안보와 직결됩니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국 종자 산업 기반이 약하면, 글로벌 기업의 종자 정책 변화나 수출 규제에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밥상의 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은 결국 여기서 나옵니다.


마무리하며

씨앗은 수천 년 동안 자연과 농부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특허증 한 장이 그 답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기술이 어떤 구조 안에서 작동하느냐가 핵심입니다. 옥수수 한 알이 지나온 여정 — 에탄올, 액상과당, 사료, 바이오플라스틱 — 의 가장 앞에는 항상 씨앗이 있었습니다. 그 씨앗이 누구의 것이냐는 질문은, 우리가 먹는 것의 가격과 다양성과 안전을 결정하는 출발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옥수수 경제학 시리즈를 마무리하겠습니다. CBOT 선물시장에서 시작한 옥수수의 가격이 한국 밥상까지 어떻게 연결되는지, 전체 흐름을 한 장의 지도로 정리해드릴 예정입니다.

 

콜라 한 캔 속의 액상과당이 어디서 왔는지 다시 확인하고 싶다면 → 콜라 한 캔 속의 옥수수 — 액상과당이 지배하는 가공식품 세계를 함께 읽어보세요.

삼겹살 가격이 한우보다 싼 이유가 옥수수 사료비와 연결된다는 이야기는 → 한우보다 삼겹살이 싼 이유 — 옥수수 사료비의 경제학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같은 소재를 음식의 시선으로 읽고 싶다면 → 쫀쿠의 쉬이익, 거품 한 모금에 담긴 250년도 오늘 이야기의 다른 각도가 되어드릴 겁니다.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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