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의 경제학 5편] 강력분·중력분·박력분 — 단백질 함량 하나가 빵과 라면과 케이크를 가른다
[밀의 경제학 5편] 강력분·중력분·박력분 — 단백질 함량 하나가 빵과 라면과 케이크를 가른다
밀가루는 다 같은 밀가루가 아닙니다
마트 제과 코너에 가면 밀가루 봉투 세 종류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가격 차이는 크지 않지만, 잘못 고르면 빵이 떡이 되거나 케이크가 질겨집니다.

이 세 가지를 가르는 기준은 딱 하나입니다. 단백질 함량입니다. 정확히는 단백질이 물과 만나 형성하는 **글루텐(Gluten)**의 양입니다. 글루텐은 반죽에 탄성과 점성을 주는 성분으로, 많을수록 쫄깃하고 탄탄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케이크처럼 부드럽고 가벼운 결을 원한다면 글루텐이 적어야 하고, 빵이나 라면처럼 씹히는 힘이 필요하다면 글루텐이 많아야 합니다.
세 가지 밀가루, 단백질로 갈립니다

**강력분(Strong Flour)**은 단백질 함량이 13% 이상입니다. 글루텐 함량이 높아 탄력 있는 반죽이 만들어지고,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부풀어 오르는 구조를 만듭니다. 식빵, 바게트, 피자도, 파스타에 사용합니다. 경질밀(Hard wheat)에서 주로 얻어집니다.

**중력분(All-purpose Flour)**은 단백질 함량이 **8.5~10.5%**입니다. 강력분과 박력분의 중간 성질로, 국수·수제비·부침개·라면에 적합합니다. 한국과 호주산 밀에서 주로 얻어집니다. 한국 가정에서 '그냥 밀가루'라고 부르는 것이 대부분 중력분입니다.
**박력분(Weak Flour)**은 단백질 함량이 **6~9%**로 가장 낮습니다. 글루텐이 적어 가볍고 바삭한 식감을 냅니다. 케이크, 카스테라, 쿠키, 튀김옷에 사용합니다. 연질밀(Soft wheat)에서 얻어집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강력분은 구조를 만들고, 박력분은 결을 만들며, 중력분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일상을 버팁니다.
한국 라면은 어떤 밀가루를 씁니까
한국 라면 산업이 사용하는 밀가루는 주로 중력분과 준강력분 계열입니다. 라면 면발의 특성상 강력분처럼 지나치게 탄력이 강하면 조리 후 식감이 딱딱해지고, 박력분처럼 너무 약하면 퍼집니다. 중력분에서 준강력분 사이의 단백질 함량이 라면 면발의 '꼬들꼬들한 쫄깃함'을 만드는 데 적합합니다.

원료 수입 경로는 더 구체적입니다. 국내 식품업체들은 미국산 밀과 호주산 밀을 혼합해 면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농심 신라면과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모두 미국산·호주산 수입 밀을 사용하며, 농심은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밀맥스 등 6개 업체로부터 밀가루를 납품받고 있습니다.
대한제분은 면 전용 고급 제품 라인업으로 '곰표고급생면용', '곰표강력제면용', '곰표고급제면용' 등을 별도로 운영하며, 면발의 부드러움과 쫄깃함을 세분화해 공급합니다. 라면 회사 입장에서는 밀가루의 단백질 함량과 글루텐 특성이 제품 맛을 결정하는 핵심 원료 변수입니다. **시장의 식탁 | 밀의 경제학 1편 — 밀가루 한 포대가 라면값을 올리는 법**에서 다뤘듯, 국제 밀 가격이 오르면 라면값이 오르는 구조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밀의 약점 — 제빵에서 왜 불리한가
**시장의 식탁 | 밀의 경제학 4편 — 한국은 왜 밀을 못 키울까**에서 다뤘듯, 우리밀의 자급률은 2%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생산량이 적은 것 외에, 품질 측면에서도 제약이 있습니다.
국내 토종 밀은 수입 밀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제빵용 강력분은 단백질 13% 이상이 필요한데, 국내 일반 품종의 우리밀은 이 기준을 안정적으로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글루텐이 부족하면 반죽이 이산화탄소를 잘 붙잡지 못해, 빵이 제대로 부풀지 않습니다. 수분 흡수율도 수입 밀과 다르고, 제분율도 낮아 같은 원맥 양으로 만들어지는 밀가루 양도 적습니다.
우리밀로 빵을 만들면 '맛은 있는데 식감이 무겁거나 덜 부풀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밀이 잘 맞는 분야는 어디인가
약점이 있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밀의 특성이 경쟁력이 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국수와 칼국수는 중력분 계열의 우리밀이 가장 잘 맞습니다. 과도한 글루텐이 없어도 되는 이 분야에서 우리밀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면발을 만들어냅니다. 수제비, 부침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 발효 식품과의 연계도 강점입니다. 우리밀 누룩을 활용한 막걸리와 전통주 분야에서 국산 밀은 수입 밀과 차별화된 발효 특성을 냅니다. 쫀쿠의 **이야기 팬트리 | 빵, 떡, 그리고 누룩의 시간**에서 다룬 것처럼, 한국의 누룩 문화는 수입 밀보다 국산 밀과 더 깊이 연결됩니다.
통밀 빵과 건강빵 시장도 가능성 있는 영역입니다. 글루텐 함량이 낮더라도 통밀 특유의 풍미와 영양 밀도에서 차별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연드림에서 판매하는 우리밀 리얼 발효빵이 이 시장의 사례입니다.
제빵 핸디캡을 넘는 대안들
제빵 분야에서 우리밀의 단백질 부족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방향은 품종 개량입니다. 농촌진흥청은 글루텐 함량이 높은 제빵 전용 품종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 성과물 중 하나가 백강밀과 황금알입니다. 두 품종 모두 글루텐 함량이 높아 제빵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정부 보급종입니다.
두 번째는 수직계열화입니다. 대전의 대표 제빵 브랜드 성심당이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성심당은 2024년 10월 대전 유성구 교촌동 자사 소유 부지 약 **7,000평(2만3,140㎡)**에 제빵용 국산 밀 품종 황금알과 백강밀을 파종했습니다. 농촌진흥청·대전시 농업기술센터와 협력해 기술 지원을 받았고, 2025년 6월 12일 첫 수확을 완료했습니다. 수확한 밀은 제분 단계를 거쳐 대전시와 함께 대전밀 빵 브랜드로 개발할 계획입니다. 빵 회사가 직접 밀밭을 가꾸고 수확해 빵으로 만드는 완전한 수직계열화입니다.
성심당의 시작이 1956년 미국 원조 밀가루 두 포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69년 만에 자신의 밀밭을 일군 이 장면은 단순한 마케팅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세 번째는 블렌딩 전략입니다. 우리밀 단독으로 강력분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면, 수입 강력분과 국산 밀을 일정 비율로 혼합해 쓰는 방법입니다. 농식품부도 최근 국산 밀 정책 방향을 '생산량 확대'에서 **'품질·수요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블렌딩·차등매입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했나 — 비교를 위한 참고점
일본도 전후 미국 원조 밀로 밀 의존 구조가 형성됐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후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수입 밀 전량을 정부 주도 국영무역 형태로 들여와 가격과 품질을 직접 관리했고, 국산 밀 품종 개발과 지역 브랜드 밀 육성을 병행했습니다. 홋카이도산 하루요코이, 기타호나미 등 지역 특산 밀 브랜드가 고급 제빵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형성했습니다.
같은 전후 밀 원조 구조에서 출발했지만, 정책 선택의 차이가 수십 년 후 자급률과 산업 구조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이안 박의 **브랜드 아카이브 | 황국균은 어떻게 일본의 국균이 되었는가**에서 다뤘듯, 일본은 발효 원료 작물을 문화와 산업으로 연결하는 데 국가 전략 수준의 일관성을 보여왔습니다.
오십보의 정리
단백질 함량 하나가 빵과 라면과 케이크를 가릅니다. 그리고 그 단백질 함량을 어느 나라 밀에서 얻느냐가 한국 식탁의 가격과 식량 안보를 결정합니다.

우리밀은 국수와 전통 발효 식품에 강점이 있고, 제빵에는 구조적 핸디캡이 있습니다. 그 핸디캡을 품종 개량, 수직계열화, 블렌딩으로 좁혀가는 시도가 지금 현재 진행 중입니다. 1956년 원조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한 성심당이 69년 만에 자신의 밀밭을 일군 것은, 그 긴 여정의 하나가 마침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자급률 2%가 5%가 되려면 품종만이 아니라 공급망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다음 글 예고
[시장의 식탁 | 밀의 경제학 6편] 밀값이 내려가도 라면값이 안 내려가는 이유 — 원가 하락이 소비자 가격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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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선물시장이 한국 라면값을 결정하는 원리는 → **[시장의 식탁 | 밀의 경제학 1편] 밀가루 한 포대가 라면값을 올리는 법**을 참고하세요.
발효 원료 작물과 국가 산업 전략의 연관성은 → 이안 박의 **브랜드 아카이브 | 황국균은 어떻게 일본의 국균이 되었는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밀가루와 누룩이 만나는 전통 발효 문화의 맥락은 → 쫀쿠의 **이야기 팬트리 | 빵, 떡, 그리고 누룩의 시간**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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