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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유의 경제학6] 올리브나무 — 기름 한 방울보다 더 많은 것을 주는 나무, 그리고 제주와 쇼도시마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이야기

오십보 백보 2026. 7. 17.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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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유의 경제학6] 올리브나무 — 기름 한 방울보다 더 많은 것을 주는 나무, 그리고 제주와 쇼도시마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지난 편에서 올리브유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고, 왜 스페인에 가뭄이 오면 서울 치킨집 기름이 바뀌는지를 읽었습니다. 숫자와 공급망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올리브를 보려 합니다.

기름이 되기 전의 올리브나무

기름이 되기 전에, 올리브는 나무입니다. 그것도 수천 년을 사는 나무. 영어 단어 oil(기름)의 어원이 라틴어 oleum(올리브유)에서 왔고, oleum은 다시 그리스어 elaia(올리브)에서 왔습니다. 우리가 모든 기름을 부르는 이름의 뿌리가 올리브라는 식물에 닿아 있습니다.

 

그 나무가 지금 제주도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기름이 되기 전의 올리브나무 — 문명을 함께 걸어온 식물

올리브나무(Olea europaea)의 원산지는 동지중해입니다.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서부)에서 시리아·팔레스타인 해안에 이르는 레반트 지역이 야생종의 기원으로 꼽힙니다. 기원전 6,000~4,000년 사이, 이 지역에서 인위적인 재배가 본격화됐습니다. 이스라엘 카르멜 해안의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 올리브를 압착한 흔적이 발견됩니다.

 

올리브나무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오래 삽니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는 3,000년이 넘은 올리브나무가 지금도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열매로 기름을 짜서 팔기도 합니다. 로마 시대에 심어진 나무가 지금도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올리브를 맺고 있다는 것은, 이 나무가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자산임을 의미합니다.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지중해의 석회암 비탈, 얕은 토양, 건조한 여름. 다른 작물이 포기하는 환경에서 올리브는 자랍니다. 그래서 고대 지중해 농업에서 올리브는 경사지를 활용하는 핵심 작물이었습니다.

 

영하 약 9~10°C까지 견딥니다. 이 임계점이 올리브나무가 자랄 수 있는 지역의 경계를 결정합니다. 이 숫자가 지금 우리나라 제주도와 일본 쇼도시마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올리브나무의 어원이 '기름'이라는 단어를 만든 이야기

올리브나무는 단어까지 만들었습니다.

올리브나무의 어원이 '기름'이라는 단어를 만든 이야기

 

그리스어 elaia(ἐλαία) → 라틴어 olīva → 영어 olive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같은 라틴어 뿌리에서 **oleum(기름)**이 나왔고, 이것이 영어 oil이 됐습니다. 우리가 카놀라유, 옥수수기름, 들기름을 다 '오일'이라 부르는 것은 결국 올리브유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지중해 문명에서 기름이란 곧 올리브유였고, 그것이 단어에 새겨진 것입니다.

 

아랍어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있습니다. 아랍어 **az-zayt(الزَّيْت)**는 '올리브유'를 뜻했고, 여기서 스페인어 **aceite(기름)**가 파생됐습니다. 스페인이 세계 올리브유의 절반을 생산하는 지금도, 스페인어의 기름이라는 단어는 아랍 지배 시대에 들어온 올리브유라는 말을 품고 있습니다.

 

언어 안에 남은 이 흔적들이, 올리브나무가 인류 문명에서 얼마나 오래 중심에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올리브나무의 쓰임 — 열매와 기름 너머

흔히 올리브나무 하면 열매와 기름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그 이상을 줬습니다.

올리브나무의 쓰임 — 열매와 기름 너머

 

등불의 연료였습니다. 전기가 오기 전, 지중해 세계의 밤을 밝힌 것은 올리브유였습니다. 이집트 신전의 등불, 그리스 아고라의 횃불, 로마 가정의 램프. 올리브유가 타면서 빛을 만들었습니다.

 

몸을 씻는 재료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운동선수들은 운동 후 올리브유를 몸에 바르고, 금속 도구(스트리길, strigil)로 땀·먼지와 함께 긁어냈습니다. 물이 귀한 환경에서의 세정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날 올리브유가 고급 스킨케어 성분으로 쓰이는 것은 이 오래된 전통의 현대판이기도 합니다.

 

향수와 화장품의 베이스였습니다. 꽃이나 허브를 올리브유에 담가 향을 추출하는 방식은 고대부터 사용됐습니다.

 

의약품이었습니다. 상처에 바르고, 소화 문제에 마시고. 고대 그리스 의학서와 초기 이슬람 의학 문헌에 올리브유의 치료적 용도가 기록돼 있습니다. 지금도 일부 지중해 지역에서는 아침에 올리브유 한 숟갈을 마시는 전통이 있습니다.

 

목재로도 씁니다. 올리브 목재는 매우 단단하고 아름다운 나뭇결을 가집니다. 크게 자라지 않기 때문에 가구보다는 조각재, 인테리어 소품, 주방용품에 주로 씁니다. 올리브 나무로 만든 도마나 오일 홀더는 지중해 여행 기념품의 단골입니다.

 

방풍림 역할도 합니다. 지중해 연안의 농촌에서 올리브나무는 바람을 막는 경계수로도 심어졌습니다. 상록수이고 뿌리가 깊어 바람에 강합니다.

 

종교의 상징입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 모두에서 올리브는 신성한 식물입니다. 성경에서 왕과 예언자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기름부음, annointing)에 올리브유가 쓰였고,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가지는 평화의 상징이 됐습니다. UN 깃발에 올리브 가지가 그려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일본 쇼도시마 — 기름이 아니라 관광으로 살아남은 올리브 섬

올리브나무가 지중해를 넘어 동아시아로 온 역사는 생각보다 짧습니다.

일본 쇼도시마 — 기름이 아니라 관광으로 살아남은 올리브 섬

 

일본에서 올리브 재배의 역사는 1908년에 시작됩니다. 메이지 41년, 일본 농상무성의 지정을 받아 미에현, 가고시마현, 그리고 가가와현 쇼도시마에서 미국에서 수입한 묘목으로 시험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발단이 흥미롭습니다. 홋카이도에서 잡은 생선을 올리브유에 절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수산업의 필요가 올리브 재배를 부른 것입니다.

 

결과는 셋 중 하나만 성공했습니다. 미에현과 가고시마현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가진 쇼도시마만 살아남았습니다.

 

현재 쇼도시마는 일본 전체 올리브 생산량의 80% 가까이를 생산하고 있으며, 올리브 나무도 1만여 그루에 이릅니다. 그런데 쇼도시마가 더 유명해진 것은 생산량 때문이 아닙니다. 1988년 가가와현이 조성한 올리브 공원이 "일본 속 지중해"라는 이미지로 관광 명소가 됐습니다. 그리스 밀로스 섬과 자매결연을 맺었고, 흰 그리스풍 풍차가 서 있는 언덕은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 실사 촬영지가 되면서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곳이 됐습니다.

 

쇼도시마가 만들어낸 올리브 경제는 생산보다 더 넓습니다. 올리브유, 올리브잎차, 올리브 화장품, 올리브 사료를 먹인 '올리브 소', '올리브 돼지', 심지어 '올리브 방어'까지. 올리브 잎 분말을 사료로 양식한 '올리브 방어'도 주목할 만합니다. 한 나무가 섬의 정체성과 경제를 통째로 만들어낸 사례입니다.


제주도에 올리브나무가 자란다

이제 우리 이야기입니다.

제주도에 올리브나무가 자란다 — 기후가 밀어주는 방향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해안지역을 포함한 해발고도 300m 이하 지역과 내륙의 해안지역에서 올리브 재배가 가능합니다.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2012년 제주에서 올리브 노지 재배를 시작했고, 5년 후 한 그루당 2.5kg의 열매를 수확하며 재배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2010년께 제주에서 올리브 재배가 시작됐고, 현재는 19농가가 10.9㏊에 경작하고 있습니다. 전남 해안 지역에서도 재배가 늘고 있어 전남에서는 약 19.4㏊에 올리브를 재배하며 고흥에서만 8농가가 15.2㏊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재배 가능한 품종도 확인됐습니다. 프란토이오(Frantoio)가 샐러드 오일이나 빵 찍어 먹는 프리미엄 오일로서 맛과 향이 뛰어나 소득작목으로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에는 제주 한림읍 비양도에서도 올리브나무 적응성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제주에서 올리브 농장을 운영하는 한 대표가 "일본 쇼도시마 섬이 올리브 산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성장시킨 사례처럼, 비양도도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곳"이라고 말한 것이 눈에 걸립니다.

 

올리브나무는 기후변화 덕분에 한반도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겨울 최저기온이 올라가는 남해안과 제주가 올리브의 새로운 가능성 지역으로 주목받는 것입니다.


올리브나무가 가진 구조적 장점 — 가치사슬이 긴 나무

오십보가 올리브나무를 경제의 시선으로 보면 하나의 특징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나무는 버리는 부분이 없습니다.

 

열매 → 테이블 올리브(절임), 올리브유, 올리브 페이스트 → 올리브잎차, 화장품 원료, 사료 첨가물 압착 찌꺼기(올리브 폼) → 가축 사료, 퇴비, 바이오에너지 목재 → 소품·조각재·주방용품 나무 자체 → 관상수, 방풍림, 관광 자원

 

한 나무에서 식품, 음료, 화장품, 사료, 연료, 목재, 관광이 동시에 나옵니다. 쇼도시마가 올리브 하나로 '올리브 소', '올리브 방어', 올리브 공원까지 만들어낸 것은 이 가치사슬의 넓이를 잘 보여줍니다.

 

제주에서 올리브가 소득작목으로 자리 잡는다면, 같은 방향으로 확장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현재 제주와 남해안에서 열매 착과가 안정화되지 않은 지역이 많고, 노지 재배 기술과 병해충 방제가 더 발전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기름을 수확해 소득을 올리는 경우는 아직 소수입니다. 그러나 방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기후가 밀어주는 방향으로, 나무가 천천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오십보의 정리

올리브나무는 기름 이전에 나무입니다.

 

6,000년 전 동지중해에서 시작해 로마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페니키아 상인을 통해 북아프리카로, 18세기 이후 신대륙으로. 그리고 지금은 기후변화를 타고 일본 쇼도시마에서, 제주도에서 뿌리를 내리는 중입니다.

 

한 나무의 이동 경로가 인류 문명의 이동 경로와 겹쳐 있습니다.

 

다음에 마트에서 올리브유를 집어들 때, 혹은 제주에서 올리브나무를 마주칠 때, 그 나무가 6,000년을 걸어온 존재라는 것을 한번 떠올려보시길 권합니다.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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