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7월 7일, 바다의 길을 빼앗은 날이자 육지의 길을 열어젖힌 날
[일상다반사] 7월 7일, 바다의 길을 빼앗은 날이자 육지의 길을 열어젖힌 날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오늘 날짜를 검색하다가 묘한 걸 발견했습니다.
7월 7일에는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이 겹쳐 있어요. 하나는 1898년, 하나는 1970년. 하나는 태평양 한가운데 섬나라 이야기고, 하나는 한반도 종단 도로 이야기입니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데, 계속 읽다 보면 묘하게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둘 다 길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 샌드위치 제도에서 시작된 이야기, 하와이
하와이 이야기는 17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태평양을 항해하다 이 섬들을 발견했을 때, 항해를 후원한 영국 해군성의 샌드위치 백작(Earl of Sandwich) 이름을 따서 이곳을 '샌드위치 제도(Sandwich Islands)'라고 불렀습니다. 그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이 나중에 음식 이름이 됐다는 이야기는 따로 있지만, 섬 이름으로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자기 땅의 이름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하와이(Hawaiʻi). 결국 그 이름이 살아남았습니다.
◼ 설탕이 왕국을 흔들었다
19세기로 넘어오면서 하와이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계기는 사탕수수였습니다.
1800년대 중반, 미국 본토의 설탕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하와이에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이 들어섰습니다. 농장주들은 대부분 미국인이었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일본, 한국, 포르투갈에서 이민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데려왔어요. 하와이가 지금처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곳이 된 출발점이 바로 사탕수수 농장입니다.
한국인들도 여기 있었습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한 첫 한인 이민자들. 낯선 태평양 섬에서 사탕수수를 베며 번 돈의 일부가 한인 사회를 통해 독립운동과 연결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와이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와도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 사탕수수 농장들이 정치적 욕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 1898년 7월 7일 — 태평양이 미국의 뒷마당이 된 날
1893년 1월,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군주 릴리우오칼라니(Liliʻuokalani) 여왕이 왕좌에서 쫓겨납니다. 주도한 것은 미국인 사탕수수 농장주들이었고, 리더는 샌퍼드 돌(Sanford Dole)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파인애플 주스 브랜드 돌(Dole), 그 집안 사람입니다. 미국 해병대가 뒤에서 지원했고, 여왕은 이올라니 궁전에 가택 연금됩니다.
여왕은 국민들의 피를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왕국은 끝내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합병을 끝내 인정하지 않은 채 1917년 세상을 떠났어요.

1898년 7월 7일, 미국 의회가 뉴랜즈 결의안(Newlands Resolution)을 통과시키면서 하와이 병합이 공식화됩니다.
왜 미국은 하와이를 원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사탕수수 농장의 경제 논리였지만, 진짜 이유는 더 컸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전략적 항구. 하와이를 가지면 아시아로 향하는 바다 위의 길이 열립니다.
하와이의 병합은 미국의 태평양 확장이었지만, 원주민에게는 주권 상실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 1941년 12월 7일 — 진주만이 불탔다
그 판단은 43년 뒤 역사가 증명합니다.
1941년 12월 7일 새벽, 일본 해군이 하와이 오아후 섬 진주만(Pearl Harbor)을 기습 공격합니다. 미 해군은 큰 타격을 입었고, 2,40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다음 날 미국은 전쟁을 선포했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방향이 바뀝니다.
이 흐름 하나만 봐도 1898년 7월 7일의 그 결의가 얼마나 긴 그림자를 드리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설탕이 지고 알로하가 뜨다
전쟁이 끝나고 1959년,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가 됩니다.

그리고 하와이의 경제를 지탱하던 사탕수수 산업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상업적 사탕수수 농장이 거의 사라졌어요. 그 자리를 채운 건 전혀 다른 산업이었습니다.
관광입니다.
2024년 하와이를 방문한 관광객은 약 968만 명, 2025년 전체 관광 소비는 약 220억 달러(약 30조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탕수수 농장 대신 리조트가 들어서고, 알로하 서비스가 섬의 얼굴이 됐어요.
그런데 이 전환이 마냥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지금 하와이에서는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논란이 커지고 있어요.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집값이 치솟고, 해변이 파괴되고, 원주민들의 삶터가 밀려나고 있거든요. 150년 전 사탕수수 농장이 원주민 문화를 흔든 것처럼, 지금은 관광 산업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섬의 이름은 여전히 하와이지만, 그 섬에서 살아가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 1970년 7월 7일 — 한반도가 하나로 이어진 날
같은 날짜로 돌아옵니다. 정확히 72년 뒤.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이 개통됩니다. 1968년 2월 착공해서 약 2년 5개월 만이었어요. 총 연장 428km, 왕복 4차선. 당시로서는 매우 빠른 기간에 완공된 국가 대동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로 위에는 지워지면 안 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공사 중 목숨을 잃은 노동자 77명. 충북 옥천 금강 어귀에 그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지금도 서 있고, '7·7회'라는 이름의 유족 모임이 매년 7월 7일 위령제를 지냅니다. 개통의 날이 동시에 추모의 날이에요.
◼ 도로가 물류의 속도를 바꾸고
경부고속도로가 열리면서 서울-부산 간 이동 시간이 크게 줄었고, '일일생활권'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현실이 됐습니다. 서울에서 새벽에 떠난 화물트럭이 당일 오후 부산항에 도착할 수 있게 됐어요.
도로는 물류의 속도를 바꾸고, 그 속도는 산업화의 체감을 바꿨습니다.
경부고속도로는 단순히 서울과 부산을 이은 게 아니었어요. 서울-대전-대구-부산 축을 산업 중심축으로 바꾼 구조물이었습니다. 경부축(京釜軸)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반도의 경제 지도가 이 428km를 중심으로 다시 그려졌습니다.
명절이면 이 도로는 또 다른 의미가 됩니다. 귀성길 정체라고 불평하면서도, 그 길 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 두 길의 미래

하와이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관광객은 돈을 가져다주지만 섬을 망가뜨리고 있어요. 지속 가능한 관광이라는 단어를 하와이가 가장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시대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다른 방향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도로 위에는 자율주행 기술과 디지털 도로 인프라가 실험되고 있어요. 차량과 도로가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스마트 하이웨이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428km가 데이터로 살아 숨 쉬는 다음 반세기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길은 늘 그 시대의 기술과 욕망을 담습니다. 1778년 제임스 쿡이 항해로 그 섬을 '발견'했을 때도, 1898년 의회가 결의안 하나로 그 섬을 삼켰을 때도, 1970년 수많은 손이 428km를 팠을 때도.
마무리 — 달력 속 한 날짜가 품은 것들
7월 7일.
하와이에서는 태평양의 지도가 바뀐 날이자, 원주민의 주권이 사라진 날입니다. 한반도에서는 도로가 열린 날이자, 77명의 이름이 땅속에 묻힌 날이에요.
길이 생기면 무언가 연결되고, 동시에 무언가 지워집니다. 1898년 바다에서도, 1970년 육지에서도 그랬어요.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새로운 길이 뚫리고 있겠죠.
그 길이 무엇을 연결하고 무엇을 지울지 — 우리가 조금 더 오래 생각해봐야 할 질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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