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유의 경제학 13편] 라드와 기름의 두 얼굴 — 먹는 기름과 태우는 기름이 갈라진 날, 그리고 동물성 지방의 부활
[식용유의 경제학 13편] 라드와 기름의 두 얼굴 — 먹는 기름과 태우는 기름이 갈라진 날, 그리고 동물성 지방의 부활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지난 편에서 크리스코를 읽었습니다. P&G가 라드(돼지기름)를 밀어내기 위해 면화씨유로 만든 쇼트닝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라드는 도대체 어떤 기름이었을까요. 왜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써온 기름이 한 세기 만에 식탁에서 사라졌고, 왜 지금 다시 돌아오고 있을까요.
그리고 오늘 편에서 오십보가 하나 더 읽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리즈 내내 다뤄온 'Oil'이라는 단어. 참기름, 들기름, 올리브유, 팜유, 코코넛오일, 포도씨유. 모두 'Oil'입니다. 그런데 자동차에 넣는 엔진오일도 Oil이고, 비행기 연료를 만드는 원유도 Petroleum Oil입니다. 먹는 기름과 태우는 기름이 같은 단어를 씁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지금 그 두 세계가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비행기 연료 탱크 안에 동물성 지방이 들어가는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 Oil — 먹는 기름과 태우는 기름이 원래 같은 것이었다
먼저 단어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영어 oil은 라틴어 oleum에서 왔고, oleum은 그리스어 **elaion(ἔλαιον)**에서 왔습니다. elaion은 **elaia(ἐλαία, 올리브나무)**에서 나온 말입니다. 결국 'oil'이라는 단어 자체가 올리브유에서 비롯됐습니다. 1편 참기름 편에서 기름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잠깐 건드렸는데, 영어에서는 이 올리브의 언어가 모든 기름을 가리키는 말이 됐습니다.

고대와 중세 인류에게 기름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올리브유는 지중해 세계에서 식용이자 등불 연료이자 의약품이자 향수 베이스였습니다. 성경에서 올리브유로 왕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기름부음)도, 로마 신전의 등불도, 그리스 운동선수가 몸에 바르는 것도 모두 같은 기름이었습니다.
동물성 지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라드(돼지기름)와 우지(소기름)는 요리에 쓰이면서 동시에 등불 연료, 윤활유, 비누 원료로 쓰였습니다. 고래기름은 19세기 세계 최대의 조명 연료이자 기계 윤활유였습니다. '먹는 기름'과 '태우는 기름'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였습니다.
그 분기점을 만든 것이 **석유(Petroleum)**입니다.

1859년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에서 상업적 유전 굴착에 성공했습니다. 석유가 땅에서 솟아오른 순간입니다. Petroleum은 라틴어 **petra(바위)**와 **oleum(기름)**의 합성어로 '바위 기름'입니다. 석유도 oil이었습니다.
그런데 석유는 등불 연료와 윤활유로서 동물성 지방을 대체하면서, '태우는 기름'의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동물성 지방은 '먹는 기름' 역할로 좁아졌습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식물성 기름이 보급되면서 동물성 지방은 그 '먹는 기름' 역할조차 빼앗겼습니다.
라드의 역사는 이 분기점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 라드란 무엇인가 — 돼지기름의 정체
라드(Lard)는 돼지의 지방 조직에서 렌더링(rendering, 가열 추출)으로 얻은 기름입니다. 영어 lard는 라틴어 lardum 또는 laridum에서 왔으며, 돼지고기 또는 돼지 지방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돼지의 어느 부위 지방을 쓰느냐에 따라 등급이 나뉩니다.
**리프 라드(Leaf Lard)**는 신장 주변의 내장 지방에서 얻습니다. 냄새가 가장 적고 질감이 섬세해 최고급 제과·제빵에 쓰입니다. 파이 반죽에 리프 라드를 쓰면 버터로는 내기 어려운 켜켜한 결이 생깁니다.
등지방(Back Fat) 라드는 등 부위 지방에서 얻습니다. 돼지 특유의 향이 약간 있어 제과보다 볶음·튀김에 적합합니다.
혼합 라드는 여러 부위 지방을 혼합해 만든 것으로, 시중에 가장 많이 유통되는 형태입니다.
지방산 구성 면에서 라드는 흥미로운 위치에 있습니다. 포화지방이 약 39~43%, 단불포화지방(올레산)이 약 43~45%, 다불포화지방이 약 10~12%입니다. 버터(포화지방 약 63%)보다 포화지방이 낮고, 단불포화지방이 올리브유와 유사한 수준입니다. 발연점은 정제 라드 기준 약 182~205°C 수준입니다.
◼ 라드의 황금기 — 수천 년의 역사
라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쓰인 요리 기름 중 하나입니다.
유럽에서 돼지는 가장 중요한 가축이었습니다. 버릴 것이 없었습니다. 고기는 식량, 가죽은 가죽제품, 뼈는 접착제, 그리고 지방은 라드. 중세 유럽의 부엌에서 라드는 버터와 함께 거의 모든 요리의 기반이었습니다.
버터가 귀했던 지역이나 계층에서는 라드가 유일한 조리 기름이었습니다. 특히 돼지 사육이 활발한 독일·폴란드·헝가리·체코 요리에서 라드는 지금도 일부 전통 요리의 기본 재료입니다. 헝가리의 구야시(Goulash), 폴란드의 비고스(Bigos), 독일의 슈말츠(Schmaltz) 요리 문화가 라드 문화의 흔적입니다.
한국 음식 문화에도 돼지기름의 흔적이 있습니다. 기름떡볶이의 기름, 돼지껍데기 구이의 기름, 옛날 국밥의 기름. 식물성 기름이 보편화되기 전, 동물성 기름이 부엌의 중심이었던 시간의 흔적입니다.
미국에서도 20세기 초까지 라드는 요리의 기본이었습니다. 파이, 쿠키, 프라이드치킨, 감자튀김. 지금 우리가 패스트푸드에서 먹는 감자튀김의 원조는 라드로 튀긴 것이었습니다.
◼ 라드의 몰락 — 두 번의 충격
라드가 밀려난 것은 두 번의 충격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1차 충격 — 크리스코와 식물성 쇼트닝(1910년대~): 12편에서 읽었듯이, P&G의 크리스코가 1911년 "라드보다 순수하고 건강한 식물성 기름"이라는 마케팅으로 미국 시장을 잠식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면화씨유, 콩기름, 카놀라유 기반의 식물성 기름이 대량 보급되면서 라드는 "구식이고 불건강한 동물성 지방"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2차 충격 — 포화지방 논쟁(1960년대~): 1961년 미국심장협회(AHA)가 심혈관 질환과 포화지방 섭취 사이의 관련성을 언급하면서 포화지방 경고가 본격화됐습니다. 라드는 포화지방의 대표 주자로 지목됐습니다. "동물성 지방 = 심장에 나쁘다"는 공식이 의료계와 식품 산업 전반에 퍼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드를 대체한 것이 부분수소첨가 식물성 쇼트닝이었는데, 이것이 트랜스지방을 만들어냈습니다. 트랜스지방은 라드보다 심혈관에 더 해롭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더 건강한 대안"이 사실은 더 나쁜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 라드의 부활 — 케토·팔레오·전통 요리의 재평가
2010년대 이후 라드는 조용히 돌아오고 있습니다.
케토제닉 다이어트와 팔레오 다이어트는 고지방·저탄수화물 식단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 흐름에서 "천연 동물성 지방이 가공 식물성 기름보다 낫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트랜스지방 문제로 부분수소첨가 쇼트닝이 퇴출된 이후, 제과·제빵 업계에서도 라드가 천연 대안으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다만 이 재평가가 과학적 공감대가 됐다기보다, 식이 트렌드와 천연 식품 선호가 맞물린 현상에 가깝습니다. 주류 영양학 가이드라인에서 라드가 올리브유나 카놀라유보다 권장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맥락과 사용량을 고려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전통 요리 관점에서는 명확합니다. 파이 반죽의 결, 탐레(Tamale)의 질감, 돼지 껍데기 튀김의 식감은 라드를 대체하는 다른 기름으로는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요리사들이 라드를 다시 찾는 이유입니다.
◼ 우지(Beef Tallow) — 소기름의 세계
우지(牛脂, Beef Tallow)는 소의 지방 조직에서 렌더링한 기름입니다. 라드와 함께 오랫동안 인류의 요리 기름이었고, 오히려 라드보다 더 광범위한 공업적 쓰임새를 가져왔습니다.
지방산 구성은 포화지방 약 49~54%, 단불포화지방 약 40~42%, 다불포화지방 약 3~4%입니다. 라드보다 포화지방이 높고 발연점은 약 200~220°C 수준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 패스트푸드 감자튀김의 상당 부분이 우지로 튀겨졌습니다. 1990년대 초 맥도날드가 건강 이미지를 위해 우지 대신 식물성 기름으로 전환했는데, 그 식물성 기름에 부분수소첨가유지(트랜스지방)가 포함됐습니다. 라드와 같은 역설이 반복됐습니다.
비누 산업에서 우지는 지금도 중요한 원료입니다. 스테아린산과 올레산이 풍부해 비누의 경도와 거품을 조절하는 데 쓰입니다. 타이어, 화장품, 항생제 생산의 원료로도 쓰입니다.
◼ 하늘을 나는 우지 — SAF와 동물성 지방의 역설
이 이야기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지가 비행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SAF(Sustainable Aviation Fuel, 지속가능 항공유)**는 항공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해 개발된 바이오 항공유입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SAF 생산량은 약 100만 톤으로 전체 항공유의 0.3%에 불과하지만, 2025년에는 190만 톤(0.6%)으로 증가했습니다. EU는 2050년까지 항공유의 70%를 SAF로 전환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현재 SAF의 약 85%가 HEFA(Hydroprocessed Esters and Fatty Acids) 기술로 생산됩니다. IATA에 따르면 향후 5년간 가동되는 SAF 시설의 약 85%가 HEFA 방식을 채택할 예정이며, 이 기술은 우지(tallow) 같은 동물성 지방, 폐식용유(WCO), 산업용 그리스를 원료로 사용합니다.
산업계는 2030년까지 폐식용유와 우지가 전체 SAF 원료의 약 40%를 공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동물성 지방이 환경을 위한 항공 연료가 되는 역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냥 단순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우지는 식품·비누·화학 산업에서도 수요가 있는 원료입니다. SAF 수요가 늘어날수록 우지 가격이 오르고, 이것이 다른 산업의 원가에 영향을 줍니다. 또한 EU RED III(재생에너지 지침) 기준상 우지의 지속가능성 인증 요건이 강화되고 있어, 공급 안정성 문제도 있습니다.
SAF는 현재 주로 지방·오일·그리스 원료를 HEFA 방식으로 전환해 생산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농업 잔재물 등 더 다양한 원료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Oil'이라는 단어가 처음 올리브에서 나왔고, 한때 고래기름이 세상을 밝혔고, 석유가 등불을 대체하면서 먹는 기름과 태우는 기름이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동물성 지방이 다시 연료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역사는 직선이 아닙니다.
◼ 오십보의 정리
라드와 우지의 이야기는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무엇이 '더 건강하고' 무엇이 '더 지속가능한가'라는 판단은 시대에 따라, 과학의 발전에 따라 바뀌어 왔다는 것입니다.
라드는 "구식이고 불건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트랜스지방이었습니다. 트랜스지방이 퇴장하자 팜유가 그 자리를 채웠는데, 팜유에는 열대우림 파괴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동물성 지방으로 눈이 가고 있는데, 동물성 지방은 SAF 원료 경쟁 때문에 가격이 오르고 있습니다.
어떤 기름도 완전한 해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한 기름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각각의 기름이 어디서 왔고, 어떤 역사를 품고 있고, 어떤 구조 안에서 움직이는지를 읽어드렸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시리즈에서 다루지 않은 한국의 잊혀가는 전통 기름들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편에서는 기름의 긴 역사를 고래기름으로 닫겠습니다.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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