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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긋는 사람들

[선을 긋는 사람들 1편]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 같은 섬, 두 개의 운명을 가른 국경선

by 오십보 백보 2026.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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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긋는 사람들 1편]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 같은 섬, 두 개의 운명을 가른 국경선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선을 긋는 사람들"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프롤로그에서는 같은 날짜에 겹친 아르헨티나 독립과 아프리카 연합 출범 이야기를 통해 "선을 긋는 것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의 몫이었다"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은 그 질문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무대, 카리브해의 섬 히스파니올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미 오십보는 아이티가 독립의 대가로 프랑스에 122년간 배상금을 갚은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 대신, 두 나라를 가르는 '선' 자체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오늘의 장면 — 위성사진 속 국경선

위성사진 국경선 대비  – 서쪽 아이티 황갈색 vs 동쪽 도미니카 초록색, 선명한 국경선

구글 어스로 카리브해를 살펴보면 특이한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서쪽 절반은 황갈색 민둥산이고, 동쪽 절반은 짙은 초록빛 숲입니다. 국경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색깔이 완전히 갈립니다. 서쪽이 아이티, 동쪽이 도미니카 공화국입니다.

 

두 나라는 같은 섬, 같은 기후, 같은 허리케인 경로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국경선에는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까지 들어서 있습니다. 위성사진의 색깔 차이가 이제는 실제 벽으로도 나타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 벽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선은 어떻게 그어졌나 — 300년 전 두 제국의 분할

1492년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 섬은 '히스파니올라(Hispaniola)', 스페인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처음에는 온전히 스페인 땅이었지만, 17세기 들어 서쪽 3분의 1을 프랑스 해적과 정착민들이 사실상 장악합니다. 1697년 리스윅 조약으로 스페인은 이 서쪽 땅을 공식적으로 프랑스에 넘겨줍니다. 이 땅이 훗날 아이티가 되는 생도맹그(Saint-Domingue)이고, 동쪽 3분의 2는 스페인령 산토도밍고로 남아 훗날 도미니카 공화국이 됩니다.

1697년 리스윅 조약  – 히스파니올라 섬 분할, 프랑스령·스페인령 표시, 두 제국의 선 긋기

같은 섬 위에서 두 제국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식민지를 운영했습니다. 프랑스령 서쪽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 노동으로 설탕과 커피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수출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스페인령 동쪽은 상대적으로 척박했고 목축업 위주의 한적한 땅이었습니다. 두 경제는 출발선부터 완전히 다르게 설계되었습니다.

 

1804년 아이티가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으로 독립했을 때, 섬의 동쪽은 아직 스페인령이었습니다. 1821년 동쪽도 독립을 선언했지만 채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1822년 아이티가 "섬 전체의 해방"을 명분으로 동쪽을 점령합니다. 이 지배는 22년간 이어졌습니다. 1844년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며 비로소 별개의 나라가 됩니다.


현지인은 어디에 있었나 — 파슬리 한 마디가 가른 생사

두 나라 사이의 앙금은 독립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37년, 도미니카의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는 국경 지역에 살던 아이티계 주민들을 겨냥한 대규모 학살을 명령합니다. 군인들은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로 '파슬리(perejil)'를 발음시켰습니다. 아이티계 주민들은 크레올어 억양 때문에 스페인어 특유의 굴린 'r' 발음을 하지 못했고, 그것이 곧 사형 선고가 되었습니다. 언어가 신분증이 되고, 신분증이 목숨을 갈랐습니다.

1937년 파슬리 학살  – 'Perejil' 발음 테스트, 언어가 신분증이 된 비극

이른바 '파슬리 학살(Parsley Massacre)'입니다. 연구자들의 추정치는 최소 9천 명에서 최대 3만 명까지 크게 갈립니다. 정확한 숫자를 어느 쪽으로 잡든, 발음 하나로 국적과 생사가 갈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선이 만든 결과 — 숲과 소득의 격차

산림·소득 격차 비교  – 아이티 12.3% vs 도미니카 45.0% 산림, GDP 5배 차이

두 나라의 격차는 지금도 뚜렷합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아이티의 산림 면적은 국토의 12.3% 수준이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45.0%에 이릅니다. 뒤발리에 부자의 장기 집권 동안 가난한 주민들이 땔감과 숯을 위해 나무를 베어야 했던 사정이 큽니다.

 

숲이 사라지면 토양 침식과 산사태 위험이 커져 같은 재해라도 피해가 커지기 쉽습니다. 2016년 허리케인 매슈가 섬을 지났을 때, 도미니카 공화국의 공식 사망자는 4명이었던 반면 아이티에서는 수백 명에서 1,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득 격차도 큽니다. 세계은행 2024년 기준 도미니카 공화국의 1인당 GDP는 약 1만 876달러, 아이티는 약 2,143달러입니다. 대략 다섯 배 차이입니다. 300년 전 그어진 선 하나가 지금도 두 나라의 소득 크기를 가르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도 그어지고 있는 선 — 콘크리트 장벽

여기까지는 과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국경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 그어지고 있습니다.

2021년 콘크리트 장벽  – 현재 건설 중인 국경 장벽, 392km, 철조망·드론·카메라

 

2021년, 도미니카 대통령 루이스 아비나데르는 아이티와의 국경 392킬로미터 가운데 절반가량에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높이 약 3.6미터 콘크리트 기초 위에 철조망을 얹고, 드론과 야간 투시 카메라까지 갖춘 구조입니다. 2025년 기준 약 170킬로미터가 완공되었습니다.

 

배경에는 아이티의 국가 붕괴가 있습니다. 무장 갱단이 수도 포르토프랭스 대부분을 장악하며 국경을 넘는 사람이 급증했고, 현재 약 50만 명의 아이티인이 도미니카 공화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미니카 정부는 2024년 한 해에만 27만 명이 넘는 아이티인을 추방했습니다. 300년 전에는 조약 문서 한 장으로 그어졌던 선이, 지금은 물리적인 벽으로 다시 그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질문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가로지를 수 있는 좁은 섬 위에서, 두 나라는 여전히 전혀 다른 세계처럼 움직입니다. 이 선을 그은 것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을 지금도 사람이 다시 긋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나눈 1884년 베를린 회의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그때 그 회의실에는 정작 아프리카인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같은 소재를 설탕과 노예 노동이라는 음식의 시선으로 읽고 싶다면 → 쫀쿠의 바닐라, 12살 소년이 세상에 선물한 달콤함에서 마다가스카르 노예 소년 에드몽 알비우스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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