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의 경제학 5편] 140년 된 브랜드가 AI를 만났을 때 — 코카콜라의 디지털 전환과 그 역설
들어가며 — 140년 된 브랜드가 AI 앞에 섰을 때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4편에서 정부가 설탕세로 코카콜라를 바꾸려 했지만, 결국 기업이 세금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부도 이기지 못한 브랜드가 이번엔 전혀 다른 도전을 맞습니다.
경쟁사도 아니고, 규제 당국도 아닙니다. AI입니다.

2022년 말 ChatGPT가 세상에 나온 이후 마케팅 업계에서 가장 자주 나온 질문 중 하나가 이겁니다. "AI가 광고를 만드는 세상에서 140년짜리 브랜드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코카콜라는 이 질문에 "두고 봐"라고 답하는 대신, 직접 실험에 뛰어들었습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 1부 — ChatGPT 이전부터 시작된 코카콜라의 AI 여정
코카콜라의 AI 마케팅은 흔히 2023년쯤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출발은 조금 더 앞서 있습니다.

코카콜라 글로벌 AI 총괄 부사장 **프라틱 타카르(Pratik Thakar)**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ChatGPT가 세상에 크게 알려지기 직전인 2022년 하반기부터 내부적으로 생성형 AI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런던의 AI 기업 **Stability AI(Stable Diffusion 개발사)**와 협업해 만든 광고가 바로 'Masterpiece' 캠페인이었습니다. 미술관의 명화들이 살아 움직이며 코카콜라 한 병을 전달하는 영상으로, MZ세대와 예술 애호가 사이에서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 내부 실험의 결과가 자신감을 줬습니다. 2023년 초, 코카콜라는 OpenAI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은 첫 번째 대형 브랜드가 됩니다. 당시는 OpenAI가 지금만큼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타카르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모두가 AI에 회의적이었을 때, 우리는 손을 들었습니다. 그 기술이 커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OpenAI의 DALL-E와 GPT를 결합해 만든 플랫폼이 이어서 등장합니다.
◼ 2부 — 'Create Real Magic': 전 세계 아티스트가 코카콜라 광고를 만들다
2023년 3월, 코카콜라는 'Create Real Magic' 플랫폼을 공개합니다.

개념이 독특했습니다. 코카콜라 140년의 아카이브 — 1931년 산타 일러스트, 클래식 병 디자인, 북극곰 캐릭터, 역대 광고 자산 — 를 모두 AI에 학습시킨 뒤, 전 세계 누구나 그 자산을 활용해 새로운 아트워크를 만들 수 있게 열어둔 것입니다. 플랫폼은 OpenAI의 DALL-E와 GPT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반응은 빨랐습니다. 출시 수 주 만에 수만 건의 아트워크가 올라왔고, 코카콜라는 그중 30명의 크리에이터를 애틀랜타 본사로 초청해 'Real Magic Creative Academy'를 진행했습니다. 기업이 광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아티스트가 함께 브랜드의 미래 광고를 만드는 구조였습니다. 팬이 콘텐츠를 만들고, 브랜드가 그것을 증폭시키는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오십보의 경제학 관점에서 읽히는 흥미로운 논리가 하나 있습니다. 전통 광고는 기업이 돈을 써서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밀어넣는' 방식입니다. Create Real Magic는 반대입니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브랜드 자산을 갖고 놀면서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이 바이럴이 됩니다. 광고비가 줄고 참여도가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마케팅이 비용에서 문화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 3부 — 디지털 광고비 60% 이상: TV에서 알고리즘으로
Create Real Magic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더 근본적인 변화가 같은 시기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코카콜라 제임스 퀸시(James Quincey) CEO가 실적 발표에서 직접 밝힌 수치에 따르면, 2019년 전체 광고 예산의 30%도 안 되던 디지털 광고 비중이, 2020년대 중반에는 60%를 훌쩍 넘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몇 년 만에 TV·인쇄·옥외 중심의 전통 광고에서 알고리즘·소셜·데이터 기반 디지털 광고로 완전히 무게 중심이 이동한 것입니다.
이 전환의 의미를 단순히 "TV 광고를 유튜브 광고로 바꾼 것"으로 이해하면 절반만 맞습니다.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어디에 보여줄지를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결정한다는 점입니다.
4편에서 다룬 가격탄력성처럼, 이번엔 광고 탄력성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같은 광고 예산으로 어떤 소비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얼마나 자주 보여줄 때 구매로 이어지는가. 과거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경험과 직관으로 찾았다면, 지금은 데이터와 AI가 찾습니다.
코카콜라는 이것을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라 부릅니다. 2024년 AI 크리스마스 광고 배포 시에도 단순히 TV에 내보낸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매틱 광고 기술을 통해 지역별로 12개의 다른 버전을 각 지역 소비자 맞춤으로 노출했습니다.
◼ 4부 — AI 크리스마스 광고: 성공인가, 실패인가
2024년 11월, 코카콜라는 큰 도전을 감행합니다. 1995년부터 이어온 크리스마스 시즌 전통 광고 **'Holidays Are Coming'**을 AI로 리메이크해 공개한 것입니다.

반응은 양쪽으로 갈렸습니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비판의 목소리는 거셌습니다. "소울이 없다(soulless)", "기괴한 느낌(uncanny eyesore)", "감동이 없는 광고"라는 반응이 소셜 미디어를 가득 채웠습니다. 여러 주요 매체와 마케팅 전문 매체들이 이 논란을 다뤘습니다. 140년의 따뜻한 감성을 쌓아온 브랜드가 AI로 만든 '가짜 감동'을 내놓았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내부 평가는 달랐습니다. 코카콜라 측은 북미·유럽 등 여러 시장에서 사전·사후 테스트를 진행했을 때, 경쟁사 크리스마스 광고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용도와 엔터테인먼트 지수를 기록했다고 내부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코카콜라는 2025년에도 AI 크리스마스 광고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소비자 모두가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이 자연이다"라는 타카르의 말처럼, 논란 자체가 화제성이 됐다는 판단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브랜드 전략 관점의 질문이 생깁니다. 코카콜라는 왜 AI 광고 논란에도 물러서지 않을까요? 3편에서 다룬 산타·북극곰 이야기를 떠올려 보시면 힌트가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산타를 발명하지 않았고 북극곰도 발명하지 않았지만, 반복으로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AI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의 논란보다 AI 시대의 크리스마스 광고 = 코카콜라라는 등식을 다시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입니다.
◼ 5부 — AI 산타와 대화하다: 'Create Real Magic Santa'
논란이 많았던 AI 리메이크 광고와 별개로, 코카콜라가 2024년 내놓은 또 하나의 AI 프로젝트는 훨씬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바로 AI 산타 대화 서비스입니다.

코카콜라는 1931년 해든 선드블롬이 그린 산타의 3D 디지털 트윈을 만들고, 여기에 OpenAI의 대화형 AI를 결합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 어디서든 26개 언어로 실제 산타와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화 내용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스노우글로브 이미지가 생성되어 소셜 미디어에 공유됩니다.
타카르가 밝힌 이 프로젝트의 인사이트가 정확합니다.
"모든 사람이 산타와 악수를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선물을 받아봤습니다. 하지만 산타와 직접 앉아서 대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AI가 기존 마케팅이 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같은 산타 이미지이지만, 이제 산타가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옵니다. 대규모이면서도 개인적인 경험, 그것이 AI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 6부 — 숫자로 보는 코카콜라 2025년: AI 마케팅의 성적표
이 모든 실험의 결과를 숫자로 확인해봅니다.
코카콜라는 2025년 연간 실적에서 **순매출 479억 달러(약 65조 원)**를 기록했습니다. 2024년(470억 달러) 대비 2% 성장, 유기적 성장률은 5%였습니다. 이는 설탕세 압박, AI 광고 논란, 글로벌 소비 둔화에도 불구하고 달성한 수치입니다.
시가총액은 2025년 기준 약 3,000억 달러(약 410조 원) 수준으로, 경쟁사 펩시코(약 1,930억 달러)와는 여전히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탄산음료 맛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격차의 상당 부분이 브랜드 자산, 그리고 그 브랜드를 시대마다 재구성해온 마케팅 전략입니다.
광고비 구조는 이미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2019년 30% 미만이었던 디지털 광고 비중이 2020년대 중반 60% 이상이 됐습니다. TV 한 편의 광고로 모두에게 같은 메시지를 보내던 시대에서, 알고리즘이 개인에게 맞춤 메시지를 골라 보내는 시대로의 전환이 완성 단계에 와 있습니다.
2019년 디지털 광고 비중 30% 미만 → 2020년대 중반 60% 이상
◼ 7부 — AI 시대의 역설: 기술이 발전할수록 감성이 더 중요해진다
코카콜라의 AI 여정에서 역설적인 교훈 하나가 보입니다.
AI 광고가 논란이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소울이 없다", "감동이 없다"는 비판이었습니다. 기술은 완벽에 가까웠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따뜻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AI 산타 대화 서비스가 호평받은 이유는 반대였습니다. 기술 자체보다 "내가 직접 산타와 대화했다"는 개인적 경험이 감동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2편에서 다룬 펩시 패러독스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람은 맛이 아니라 기억으로 콜라를 마십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결국 자신만의 기억과 감정입니다.
코카콜라가 140년간 해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감정, 산타라는 기억, 북극곰이라는 따뜻함. AI는 그것을 더 크게, 더 개인적으로,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도구일 뿐입니다. 도구가 바뀐다고 전략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코카콜라가 AI 광고 논란에도 물러서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처음엔 어색해도,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기억이 됩니다. 산타가 그랬고, 북극곰이 그랬습니다. 이제 AI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계산입니다.
마무리 — 5편을 마치며: 콜라의 경제학이 남긴 것
5편에 걸쳐 코카콜라를 통해 읽은 경제학을 정리해봅니다.
1편에서 1886년 애틀랜타 약국에서 탄생한 시럽 한 잔이 어떻게 세계 최대 브랜드가 됐는지를 봤습니다. 2편에서는 맛이 아니라 기억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뇌과학과 브랜드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3편에서는 산타와 북극곰이라는 문화 자산을 100년에 걸쳐 브랜드 자산으로 바꾼 전략을 다뤘습니다. 4편에서는 정부의 설탕세라는 외부 압력이 역설적으로 코카콜라 포트폴리오를 강화시킨 역설을 봤습니다. 그리고 5편에서 140년 된 브랜드가 AI 도구를 들고 새로운 세대 앞에 서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통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시대마다 다른 도구를 들었지만, 항상 같은 것을 팔았습니다. 감정입니다.
1886년에는 두통약이라는 효능, 1931년에는 산타의 따뜻함, 1985년 뉴코크 실패에서는 기억의 소중함, 2018년 설탕세 시대에는 선택의 자유, 그리고 2024년에는 AI로 만든 나만의 크리스마스 기억. 포장은 바뀌었지만 내용물은 같습니다.
AI가 하는 일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최대한 빨리 콜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콜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떠오르는 장면은, 여전히 우리가 만든 시간입니다.
오십보에게 코카콜라는 음료 회사가 아닙니다. 브랜드가 시간을 이기는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 관련 글 모음
- 콜라의 경제학 4편 — 설탕세의 역설
- 콜라의 경제학 3편 — 산타도, 북극곰도 코카콜라가 만든 게 아니다
- 콜라의 경제학 2편 — 맛이 아니라 기억이 이겼다
- 이안박의 브랜드 관점에서 본 코카콜라 vs 펩시 100년의 전쟁이 궁금하시다면 → 코카콜라 vs 펩시 — 100년의 전쟁, 맛이 아니라 문화가 이겼다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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