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 사람들 9편] 38선 — 한반도를 반으로 가른 그 선은, 30분 만에 그어졌다
[선을 긋는 사람들 9편] 38선 — 한반도를 반으로 가른 그 선은, 30분 만에 그어졌다
여러분, "선을 긋는 사람들" 아홉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편은 조금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우리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장면 — 지금 이 순간 한반도
2026년 1월,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찾아달라고 정부에 신청한 이산가족 13만 4,516명 가운데 사망자가 10만 148명을 넘어섰습니다. 생존자는 3만 4,368명이며, 이 중 80대 이상이 3분의 2에 가깝습니다. 매달 평균 200명 넘는 신청자가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1945년에 헤어진 사람들입니다. 그 이산가족을 만든 것은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전쟁보다 5년 앞서 그어진 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은 워싱턴 D.C.의 한 사무실에서, 미군 대령 두 명이 벽에 걸린 지도를 보며 짧은 시간 안에 그었습니다.
선은 어떻게 그어졌나 — 1945년 8월, 지도 위의 위선 하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며 일본의 항복이 임박했습니다. 소련은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은 아직 한반도에 도착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급히 점령선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 임무를 맡은 것이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 두 명의 미군 대령이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던 두 사람은 벽에 걸린 지도를 보며 짧은 시간 안에 선을 골랐습니다. 북위 38도선. 한반도를 대략 절반으로 나누는 위선으로, 지형이나 민족 분포, 행정 구역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딘 러스크는 훗날 회고록에서 "소련이 38도선을 받아들였을 당시 다소 놀랐다"고 회고했습니다. 소련은 이미 한반도 북부까지 진출한 상황이라 더 남쪽까지 점령할 수도 있었지만, 미국이 제안한 38선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이 논의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8월 15일 해방의 기쁨 속에, 38선은 이미 그어져 있었습니다.
현지인은 어디에 있었나 — 해방의 날, 그러나 참여할 자리는 없었다
8월 15일 정오, 일왕의 항복 방송이 흘러나오며 35년 식민지배가 끝났습니다. 국내에서는 여운형이 이끄는 건국준비위원회가 빠르게 조직되며 전국 각지에 지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스스로 나라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9월 8일 인천에 도착해 곧바로 미군정을 선포했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도, 임시정부도 정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미군정은 일본 통치기의 행정 인력과 제도를 상당 부분 그대로 활용했고, 이에 대한 반발과 혼란이 컸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반도에 대한 임시 신탁통치가 논의·결정되자,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반탁 시위가 거리를 메웠습니다. 그러나 강대국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38선을 그을 때도, 신탁통치를 결정할 때도,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의사가 반영된 순간은 없었습니다.
선이 만든 결과 — 38선에서 휴전선으로
분단은 처음엔 임시 조치였습니다. 미·소 공동위원회가 통일 정부 수립을 협의하기로 했지만 냉전이 깊어지며 결렬됐고, 1948년 남쪽에 대한민국이,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각 수립됐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하하며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됐고, 유엔군 개입으로 전선이 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중국군 개입으로 다시 38선 부근까지 내려왔습니다. 3년간의 전쟁으로 남북을 합쳐 수백만 명의 희생이 발생했고, 대규모 전쟁고아가 생겨났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이는 평화조약이 아니라 전쟁을 멈춘다는 정전(停戰) 협정입니다. 한반도에는 지금까지도 정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고,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대한민국은 이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38선은 이제 없습니다. 대신 동서 238km의 군사분계선(MDL)과, 그 남북으로 각 2km씩 총 4km 너비의 비무장지대(DMZ)가 있습니다. 70년 넘게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 지역에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생태계가 형성됐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역설적으로 자연의 피난처가 된 셈입니다.

오늘의 질문 — 이 선은 언제 사라질 수 있는가
이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본 선들은 아프리카의 직선들, 사이크스-피코의 손가락 선, 래드클리프의 5주짜리 선이었습니다. 모두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38선은 다릅니다. 이 글을 읽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를 가로지르는 선입니다.

독일은 1990년 통일했습니다. 베트남은 1975년, 예멘도 방식은 달랐지만 통일의 경험이 있습니다. 한반도만 여전히 그어진 선 위에 서 있습니다. 그 사이 이산가족들은 계속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이 문제를 지워가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그어진 선이 80년을 살아남았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냉전이 섬 하나를 통째로 갈라놓은 사례들, 대만과 키프로스, 동티모르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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