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 사람들 10편] 냉전이 나눈 섬들 — 대만·키프로스·동티모르, 선은 섬도 비켜 가지 않는다
[선을 긋는 사람들 10편] 냉전이 나눈 섬들 — 대만·키프로스·동티모르, 선은 섬도 비켜 가지 않는다
여러분, "선을 긋는 사람들" 열 번째 이야기입니다. 9편까지는 선을 그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편은 조금 다릅니다. 선이 그어지는 것을 막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바다조차 그 선을 막아주지 못한 세 개의 섬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장면 — 세 섬, 세 개의 현재
대만 해협에서는 매일 중국 인민해방군 항공기의 움직임이 감시됩니다.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은 영공과는 다른 개념이라 '침범'보다는 '진입'이 정확한 표현인데, 2024년 한 해 이 구역에 진입한 중국 항공기는 3,615회에 달해 전년보다 크게 늘었습니다.
TSMC로 대표되는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세계 최첨단 반도체 제조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2025년 기준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는 12개국에 불과합니다. 인구 약 2,330만 명의 이 섬은 지금도 '중화민국'과 '대만'이라는 두 이름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키프로스 니코시아는 지중해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수도입니다. 50년 넘게 유지된 '그린 라인'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유럽연합 회원국인 키프로스 공화국이, 북쪽은 터키만 인정하는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이 자리합니다. UN 평화유지군(UNFICYP)은 1964년부터 60년 넘게 이 섬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UN 평화유지 임무는 1948년 시작된 UNTSO지만, UNFICYP 역시 가장 오래 지속 중인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동티모르 딜리는 2002년 5월 20일 독립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입니다. 세계은행 기준 2025년 인구는 약 142만 명, 1인당 GDP는 약 1,341달러입니다. 그러나 티모르해 아래에는 막대한 천연가스와 석유가 잠들어 있습니다. 24년에 걸친 인도네시아 점령기 동안 최소 10만 명 이상의 분쟁 관련 사망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독립을 얻었지만, 그 비용은 너무 컸습니다.

세 섬의 분단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만은 내전의 패자가 바다를 건너며 만들어진 선이고, 키프로스는 식민지 독립 이후 민족 갈등과 보장국 체제가 폭발하며 생긴 선이며, 동티모르는 제국이 떠난 빈자리에 더 큰 이웃 국가가 들어오며 생긴 선입니다. 세 이야기의 원인이 냉전 하나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냉전은 이 선들을 국제정치의 언어로 굳히는 넓은 배경이었습니다. 섬은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선은 어떻게 그어졌나
대만 — 내전의 패자가 건너간 섬(1949)
1945년 일본이 물러난 중국 대륙에서 국공내전이 재개됐습니다. 장제스의 중국국민당과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 1949년 전세가 기울자 장제스는 약 120만 명의 군인과 정부 인사를 이끌고 대만 해협을 건넜습니다. 대만 해협은 지점에 따라 폭이 다른데, 가장 좁은 곳은 약 130km, 일반적으로는 160~180km 안팎으로 설명됩니다. 이 선은 회의실이 아니라 내전의 결과가 만들어낸 선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제7함대를 대만 해협에 배치했고, 이 결정이 사실상 양안 분단을 국제적으로 고착시켰습니다.
키프로스 — 식민지 독립 후 폭발한 민족 갈등의 선(1974)
키프로스가 영국의 행정권 아래 들어간 것은 1878년 키프로스 협약을 통해서였습니다. 베를린 회의와 같은 시기 동방문제 외교 질서 속에서 나온 협약이지만, 베를린 회의 자체가 직접 키프로스를 넘긴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계(약 80%)와 터키계(약 18%) 주민이 함께 살던 이 섬은 1960년 독립할 때 영국·그리스·터키를 보장국으로 지정하는 협정 아래 놓였습니다.
1974년 7월 15일 그리스 군사정권이 키프로스를 그리스에 합병하려는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터키는 보장국 권리를 내세워 7월 20일 군사 침공을 개시했고, 두 달 만에 섬 북쪽의 37%를 점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계 주민 약 16만 명이 남쪽으로, 터키계 주민 약 4만 5천 명이 북쪽으로 이주했습니다. 1983년 북키프로스는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를 승인한 나라는 터키뿐입니다.
동티모르 — 포르투갈이 떠난 자리(1975)
티모르섬 서쪽은 네덜란드령, 동쪽은 포르투갈령이었습니다. 1974년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으로 식민지를 서둘러 포기하면서 동티모르에 권력 공백이 생겼습니다. 1975년 11월 28일 좌파 독립단체 프레틸린이 독립을 선언했지만, 단 9일 뒤 인도네시아군이 침공했습니다. 미국 국립안보문서보관소가 공개한 기밀해제 문서에 따르면, 침공 직전 포드 대통령은 자카르타에서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우리는 이해할 것이며 이 문제로 압박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했고, 키신저 국무장관도 신속한 성공을 언급했습니다. 동티모르는 1976년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편입됐습니다.
현지인은 어디에 있었나

대만에는 원주민과 17세기 이전부터 이주해온 본성인이 있었습니다. 1949년 국민당과 함께 건너온 외성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였지만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1947년 2·28 사건에서는 약 1만 8천에서 2만 8천 명이 살해되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만 민주화는 1996년 첫 총통 직선제 선거로 결정적 전기를 맞았지만, 실제로는 1987년 계엄 해제, 1991~1992년 국회 전면개선, 2000년 첫 정권교체로 이어진 긴 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 어디에서도 원주민과 본성인이 처음부터 결정에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키프로스는 수백 년간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섞여 살던 섬이었지만, 강제 이주 이후 완전히 분리됐습니다. 파마구스타의 바로샤 지구는 1974년 이전 약 3만 9천 명이 살던 해변 관광지였으나, 주민이 모두 떠난 뒤 반세기 넘게 폐허로 방치돼 있습니다.
동티모르는 가톨릭 신앙과 테툼어로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1991년 11월 12일 딜리의 산타 크루즈 묘지에서 열린 평화 시위 중 약 250~270명이 인도네시아군의 총격에 숨졌고, 이 장면이 세계에 알려지며 국제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선이 만든 결과
대만은 분단된 채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습니다. 대만 해협의 긴장은 총성보다 숫자로 먼저 나타납니다. 하루에 몇 대의 항공기가 ADIZ에 진입했는지가 매일의 뉴스가 됩니다. 전쟁은 아니지만 평화도 아닌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키프로스는 2003년 국경이 처음 열리며 남북 주민들이 30년 만에 서로의 마을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법과 현실은 여전히 다른 지도를 그립니다. 2004년 EU에 가입한 주체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키프로스 공화국 전체이지만, 키프로스 정부가 실효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북부에는 EU 법 적용이 유예돼 있습니다. 같은 해 통일안(아난 플랜) 국민투표에서 그리스계 주민의 약 76%가 반대한 반면 터키계 주민의 약 65%는 찬성했습니다. 같은 안이 한쪽에서는 거부되고 다른 쪽에서는 승인된 이 결과는, 키프로스 분단이 단순한 국경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과 안전 감각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동티모르는 1999년 UN 주도 주민투표에서 78.5%가 독립을 선택했지만, 투표 직후 민병대의 보복으로 더 많은 희생이 발생했습니다. 2002년 독립 이후에도 24년 점령의 유산은 깊습니다. 점령기 희생자 수는 자료마다 차이가 크지만, 연구기관들의 보수적 추정은 분쟁 관련 사망을 최소 10만 명 안팎으로 보며, 이 중 직접적인 살해·실종은 약 1만 8천 명 수준으로, 나머지 다수는 굶주림과 질병 등으로 인한 초과 사망으로 분류됩니다. 총구로 설명되지 않는 죽음이 절반 이상이었던 셈입니다. 티모르해의 가스전을 둘러싼 호주와의 분쟁은 2018년에야 영구 해양경계 조약으로 타결됐습니다. 선은 육지뿐 아니라 바다 위에도 그어졌습니다.
오늘의 질문 — 국가란 무엇인가
세 섬은 서로 다른 답을 갖고 있습니다. 대만은 강력한 정부와 경제, 선거를 갖췄지만 국제적 승인에는 제약이 있습니다. 북키프로스는 독자 정부를 운영하지만 터키 외에는 국가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동티모르는 오랜 점령 끝에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어 독립국이 됐지만, 경제적 자립이라는 또 다른 선 앞에 서 있습니다.

바다가 막아주는 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냉전은 바다보다 먼저 그 섬에 도착했습니다. 선을 그은 사람들은 섬의 주민이 아니었고, 그 선을 지우는 일도 여전히 주민들이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영토인가, 정부인가, 주민의 의지인가, 아니면 타국의 승인인가. 이 질문은 어쩌면 한반도에도 향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국경이 전쟁으로 그어졌던 300년의 역사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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