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 사람들 14편] 국경을 바꾼 나라들 — 선이 답이었는가
[선을 긋는 사람들 14편] 국경을 바꾼 나라들 — 선이 답이었는가
오십보입니다. 오늘은 "선을 긋는 사람들" 시즌1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장면 — 2025년, 주바
2025년 초, 유엔 남수단 인권위원회는 짧은 문장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올해만 30만 명이 새로 피란길에 올랐다." 남수단의 수도 주바를 처음 찾는 사람은 당황합니다. 독립국의 수도치고는 포장도로가 드물고, 저녁이 되면 총성이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불과 2011년에 독립했습니다. 독립 국민투표 찬성률은 98.83%.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민심이 만들어낸 나라였습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남수단은 취약국가지수(Fragile States Index)에서 최근 수년간 세계 최상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전으로 지금까지 수십만 명이 숨졌고, 난민과 국내 실향민을 합치면 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독립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됐을까요. 이번 편은 시즌1 전체가 추적해온 '선'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자리입니다. 선을 바꾼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쪼갠 나라, 합친 나라, 쫓겨난 나라. 오늘은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세 사례를 꺼내놓습니다. 선이 답이었는가.
남수단 — 98.83%의 찬성이 14년 만에 마주한 것
2011년 7월 9일 독립을 선언한 남수단은, 1955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진 수단 내전에서 200만 명 넘는 사망자를 낸 끝에 국제사회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독립한 지 2년여 만인 2013년 12월, 다시 내전이 시작됐습니다. 대통령 살바 키르(딩카족)와 부통령 리에크 마차르(누에르족)의 권력 다툼이 곧바로 민족 분쟁으로 번졌고, 2018년 평화협정 이후에도 지역 무장세력의 충돌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습니다. 남수단은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원유 매장지를 품고 있지만, 정유 시설과 송유관은 여전히 북쪽 수단 땅에 있습니다. 독립한 남수단은 자기 석유를 팔기 위해 갈라선 수단을 거쳐야 하는 처지가 됐고, 수익의 상당 부분은 수수료로 빠져나갑니다. 독립 당시 문해율은 20%대에 머물렀고, 수십 년 내전을 치르는 동안 '통치'를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선을 바꾸는 데는 투표가 필요했지만, 나라를 만드는 데는 제도와 분배와 타협의 문화가 필요했습니다.
에리트레아 — 99.8%의 찬성이 만든 '아프리카의 북한'
1993년 4월 에리트레아는 독립 투표에서 99.8%의 찬성을 얻었습니다. 에티오피아와의 30년 독립전쟁(1961~1991년) 끝에 얻어낸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독립 전쟁을 이끈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는 지금까지 30년 넘게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헌법은 있지만 시행된 적이 없고, 대선은 한 번도 치러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가혹한 정책은 무기한 국민개병제입니다. 공식 복무 기간은 18개월이지만 실제로는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고, 이 기간 동안 집권당 소유 기업의 공사장과 농장에서 낮은 임금으로 노동에 투입됩니다. 유엔 인권보고서는 이를 노예제에 가까운 강제노동이라고 비판해왔습니다. 그 결과 인구의 10%를 넘는 수십만 명이 해외로 탈출한 것으로 추정되며, 국제 NGO와 언론은 이 나라를 '아프리카의 북한'이라 부릅니다. 독립을 만들어낸 세력이 독립 이후에도 전쟁 시절의 복종과 희생의 논리로 나라를 운영하려 했던 결과입니다.
동티모르 — 78.5%의 선택과 '자원의 저주'
1999년 8월 30일 동티모르 독립 투표에서 78.5%가 독립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발표된 뒤 인도네시아군과 민병대가 한 달 가까이 벌인 보복으로 추가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2002년 5월 20일, 동티모르는 21세기 첫 독립국이 됐습니다.

동티모르에는 티모르해 해저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있었지만, 그 상당 부분이 호주와의 해상 경계에 걸쳐 있었습니다. 독립도 하기 전에 호주는 이미 관련 조약을 체결해둔 상태였고, 동티모르는 독립 이후에도 수년간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2018년에야 해상 경계를 재획정해 자원 수익의 더 큰 몫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나라의 1인당 GDP는 이웃 인도네시아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만 동티모르는 선거가 열리고 정권이 교체되며 언론이 기능하는 나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점이 남수단, 에리트레아와 결정적으로 갈립니다.
선을 바꿨지만 바뀌지 않은 것들
세 나라 모두 독립 찬성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그 숫자와 이후의 결과는 나란히 가지 않았습니다. 남수단은 취약국가지수 최상위권에, 에리트레아는 인구의 상당수가 탈출하는 나라에, 동티모르는 세계 최빈국 대열에 남았습니다.

세 나라가 공유하는 구조적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원 분배입니다. 남수단의 석유, 동티모르의 해저 가스 모두 소수 권력집단의 손에 들어가거나 외부에 상당 부분을 내줘야 했습니다. 둘째, 통치 구조의 부재입니다. 적과 싸우는 능력과 국민을 위해 제도를 설계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기술이며, 독립 영웅이 반드시 좋은 통치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셋째, 국제사회 지원의 한계입니다.
독립 승인은 빨랐지만 이후의 국가 건설 지원은 느리고 얄팍했습니다. 동티모르가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엔의 장기 개입이 있었습니다.
시즌1 전체와의 대화
2편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이 아프리카를 나눴을 때, 그 선은 부족과 언어를 무시했습니다. 7편 인도·파키스탄에서 래드클리프가 5주 만에 선을 그었을 때, 1,400만 명이 움직였습니다. 9편 한반도에서 미군 대령들이 짧은 시간에 38선을 그었을 때, 그 선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14편의 세 나라는 다릅니다. 외부가 강요한 선이 아니라, 국민이 투표로 스스로 바꾼 선입니다. 그런데도 결과는 이랬습니다. 여기서 시즌1 전체가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선을 바꾸는 것은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오늘의 질문 — 그렇다면 좋은 선이란 무엇인가
프롤로그에서 우리는 "이 선은 누가, 왜, 어떻게 그었는가"를 물었습니다. 14편을 지나며 이제 그 질문에 잠정적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선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선입니다. 베를린 회의의 선도, 래드클리프의 선도 현지인 없는 자리에서 그어졌지만, 동티모르 사람들은 적어도 스스로 투표했고, 그 최소한의 과정이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지켜낸 기반이 됐습니다. 좋은 선은 그 안의 자원과 권력이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는 선입니다. 석유와 가스가 있다고 저절로 잘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많은 외부 간섭을 받은 나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선은, 긋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아는 선입니다. 에리트레아는 독립을 위해 30년을 싸웠지만, 독립 이후를 설계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시즌1은 여기서 끝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 것은 '선을 그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즌2에서 볼 것은 '선 안에서 삶을 만들어낸 사람들'입니다. 선이 나쁘게 시작됐어도,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시작했어도, 원하지 않았는데 쫓겨났어도, 그 선 안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나라들이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시즌1을 시작한 바로 그 나라,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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