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류의 경제학1] 참기름 — 방앗간에서 북미 마트 진열대까지, 한 방울의 경제학
[식용류의 경제학1] 참기름 — 방앗간에서 북미 마트 진열대까지, 한 방울의 경제학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쫀쿠의 참깨 이야기 — 열려라, 참깨! 주문 한 마디에 담긴 5,500년의 이야기를 읽다가, 오십보는 주방으로 걸어갔습니다.

냉장고 옆 선반에 작은 갈색 유리병 하나가 있었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올라오는 그 냄새. 고소하다는 말 하나로는 부족하고, 따뜻하다고도 할 수 있고, 어쩐지 어머니의 부엌 냄새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코로 알고 있는 그 냄새.
참기름입니다.
쫀쿠가 씨앗의 역사와 문화를 따라갔다면, 오늘 오십보는 그 씨앗이 기름이 되고 난 뒤의 이야기를 읽어보겠습니다. 5,500년의 기름 한 방울이 어떻게 한국인의 밥상 위에 올라왔는지, 그리고 그 작은 병 안에 어떤 경제가 담겨 있는지입니다.
기름 중의 기름 — 참기름은 왜 다른가
식용유에는 쓰임새에 따른 위계가 있습니다.
옥수수기름은 튀김 냄비로 들어가고, 카놀라유는 프라이팬 위에서 조용히 일하고, 올리브유는 드레싱으로 마무리를 장식합니다. 그런데 참기름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끓이지 않습니다. 볶지 않습니다. 튀기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 가장 마지막에, 가장 적은 양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로 들어갑니다.
비빔밥의 마지막 한 바퀴. 나물 무침의 두어 방울. 국밥 위에 살짝 두른 한 점. 참기름은 완성의 언어입니다.
발연점이 약 160~180도 수준으로 식용유 중 낮은 편이라, 고온 조리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열을 가하면 그 복잡한 향기가 날아가버립니다. 참기름의 가치는 오직 날것으로 쓸 때 드러납니다. 이것이 참기름이 수천 년 동안 '조미료'로서의 자리를 지켜온 이유입니다.
성분을 들여다보면 왜 그 맛이 복잡한지 이해됩니다. 참깨를 볶아 압착할 때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일어납니다. 단백질과 당이 열을 만나 수백 가지 방향 물질을 만들어내는 반응입니다. 그 결과물이 세사몰(Sesamol), 세사민(Sesamin), 세사몰린(Sesamolin) 같은 리그난 계열 물질입니다. 이것들이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는 동시에, 참기름 특유의 고소하고 깊은 향기를 만들어냅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참기름은 다른 식용유에 비해 산패가 매우 느립니다. 올리브유나 들기름은 개봉 후 빠르게 산화되는 반면, 참기름은 항산화 성분이 스스로를 지킵니다. 냉장 보관하지 않아도 수개월 이상 품질이 유지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참기름이 한국으로 온 길 — 실크로드의 마지막 기착지
참깨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대로 추정됩니다. 에티오피아 인근이 유력한 기원지로 꼽힙니다. 그것이 인더스 문명(기원전 3,500년경)에서 재배되었고,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집트로, 다시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한반도에 참깨가 들어온 시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참깨와 참기름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고, 고려시대에는 왕실 진상품으로 올랐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제례상에 빠지지 않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참기름을 오래전부터 향유(香油), 진유(眞油), 호마유(胡麻油) 같은 이름으로 불러왔습니다. 이름에서부터 "기름이긴 한데, 향과 진짜 값어치가 있는 기름"이라는 뉘앙스가 읽힙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분기가 일어납니다.
같은 실크로드를 통해 서쪽으로 전파된 참깨는 중동에서 **타히니(Tahini)**가 됐습니다. 후무스의 재료, 샤와르마의 소스, 할바의 베이스. 볶지 않고 생참깨를 갈아 만드는 흰색의 페이스트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참깨를 강하게 볶은 뒤 압착해 짙은 갈색 기름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씨앗이 서쪽에서는 페이스트가 되고, 동쪽에서는 기름이 됐습니다. 조리 문화의 차이가 같은 재료에서 완전히 다른 식품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일본에는 고마아부라(ごま油)가 있고, 중국에는 마유(麻油)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기름을 한국처럼 밥상의 마침표로, 거의 모든 요리의 완성 단계에 쓰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참기름 소비량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단연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한식의 마침표, 사치품이었던 시절
한국 식문화에서 참기름은 늘 "마지막 한 끗"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농촌진흥청과 여러 기록은 참기름을 "한식의 마침표"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그만큼 귀한 재료이기도 했습니다. 신라 시대 폐백 품목에도 참기름이 들어갔다고 전해지고, 고려 명종 때는 한과를 만들 때 참기름이 너무 많이 쓰이다 보니 왕실의 참기름이 동나 한과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왕이 디저트를 제한할 만큼 부담스러운 기름"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금도 시장에서 제대로 볶고 착유한 참기름 한 병 가격을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참기름 한 병의 경제학 — 왜 이렇게 비싼가
마트에서 참기름 코너 앞에 서면 가격 때문에 멈추게 됩니다. 국산 참기름 160ml 한 병이 2만 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같은 용량의 올리브유 가격과 비교해도 비쌉니다. 왜일까요.

구조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참기름 1리터를 만들려면 참깨 약 3kg이 필요합니다. 압착 수율이 약 30%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산 참깨의 국내 자급률은 2024년 기준 약 8~12% 수준에 그칩니다. 나머지 88~92%는 수입산입니다. 주요 수입국은 인도, 수단, 에티오피아, 중국 등입니다.
구분 수치
| 참기름 1L 생산에 필요한 참깨 | 약 3kg |
| 국산 참깨 자급률 (2024) | 약 8~12% |
| 국산 참기름 160ml 소비자가 | 약 1만 8,000~2만 5,000원 |
| 혼합·수입산 참기름 160ml 소비자가 | 약 5,000~1만 원 |
국산 참깨와 수입산 참깨의 가격 차이는 3~5배에 달합니다. 여기에 압착·정제·포장 비용을 더하면 국산 100% 참기름이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가 드러납니다.
문제는 이 가격 차이가 원산지 혼동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시장에는 '국산'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 내용물은 수입산 참깨를 국내에서 압착한 제품, 혹은 국산·수입산 혼합 제품들이 존재합니다. 올리브유의 구조에서 스페인산이 이탈리아 라벨로 팔리는 원산지 프리미엄 게임을 읽었다면, 참기름도 닮은 구조입니다.
참기름 산업의 현재 — 방앗간, 공장, 그리고 소농의 반격
조금 시간을 앞으로 당겨봅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참기름은 동네 방앗간의 상징이었습니다. 마을에서 걷어온 참깨를 볶아서 바로 짜 주는 구조였죠. 지금도 농촌이나 재래시장에는 이런 방앗간이 남아 있지만, 한국 참기름 시장의 무게 중심은 이미 상당 부분 공장으로 옮겨간 상태입니다.

업계 추정으로 국내 참기름 시장 규모는 약 2,000억~2,500억 원 수준입니다. 작아 보이지만, 들기름·향신유 시장까지 합산한 한국 조미기름 시장 전체는 약 5,000억 원 규모에 달합니다.
이 시장의 구도는 세 층으로 나뉩니다.
**대상(청정원)**은 '맛있는 참기름'으로 조미기름 시장 1위 자리를 수십 년째 지키고 있습니다. '국산 볶음참깨 100%' 라인을 앞세워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은 대형마트 유통망을 활용한 중간 가격대 라인을 운영합니다. 참기름보다는 식용유 전반의 카테고리 지배력이 강점입니다.
오뚜기는 후발주자지만 '프레스 착즙 참기름' 등 차별화 제품으로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장에 최근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남 의령, 충북 음성, 전남 고흥 등 참깨 주산지에서는 계약 재배 농가가 직접 참기름을 압착해 소비자에게 직판하는 구조가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카카오 선물하기를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연결되면서, 100ml에 2만~3만 원이 넘는 프리미엄 전통 참기름도 완판되는 사례가 나옵니다.
와인 시장에서 테루아(Terroir) 개념이 지역·토양·농부의 손길을 가격으로 만들었듯, 참기름 시장에서도 **"어떤 땅에서, 누가 기른 참깨를, 어떻게 짰는가"**가 가격의 근거가 되는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낙농의 경제학에서 에쉬레 버터가 AOP 인증으로 명품이 된 방식과 닮은 흐름입니다.

숫자로 보는 참기름의 세계
글로벌 시장 조사에 따르면 세계 참기름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46억 달러 수준으로 평가되고, 2030년대 초까지 연평균 6% 안팎 성장해 70억~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팜유나 콩기름처럼 "톤 단위로 투입하는" 기름에 비하면 작은 시장이지만, 꾸준히 자라는 고부가가치 틈새 시장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한국의 참기름은 이 틈새 시장에서 흥미로운 포지션을 잡고 있습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를 보면 한국 참기름 수출액은 2019년 약 530만 달러 수준에서 2023년에는 1,000만 달러를 넘어섰고, 2026년 1~4월 수출은 이미 614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수출지도를 펼쳐보면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호주, 유럽 등 K-푸드 열풍이 강한 지역이 대부분입니다. 김밥·비빔밥·K-BBQ가 인기를 끌수록, 그 뒤에서 참기름 수출 그래프도 조금씩 같이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자급률 8%의 의미 — 참깨와 공급망
잠깐 시선을 넓혀보겠습니다.
국산 참깨 자급률 8~12%. 이 숫자는 단순히 '비싸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옥수수의 경제학에서 읽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 하나가 해바라기유 가격을 두 배 이상 폭등시켰습니다. 참깨의 주요 수입국인 수단, 에티오피아, 인도는 모두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입니다. 수단 내전이 심화되거나 인도가 수출을 제한하면, 한국 참기름 시장은 즉각적인 충격을 받게 됩니다.
국내 참깨 재배 면적은 1980년대 최고점 대비 80% 이상 감소했습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기계화가 어려운 작물이어서, 고령화된 농촌에서 점점 외면받고 있습니다. 정부가 국산 참깨 재배 농가에 직불금을 지원하고 계약 재배를 장려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유인이 충분하지 않은 한, 농가가 수익성 높은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흐름은 막기 어렵습니다. 자급률 8%는 구조적으로 더 내려갈 수 있는 숫자입니다.
냄새가 고향인 이유
왜 참기름 냄새는 그토록 즉각적으로 기억을 불러올까요. 올리브유나 카놀라유는 그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기름은 뚜껑을 여는 순간, 어릴 적 부엌이 떠오릅니다. 명절 아침이 떠오릅니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기억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감각입니다. 냄새 신호는 편도체와 해마를 거쳐 감정 기억을 직접 활성화합니다. 다른 감각 정보와 달리, 냄새는 이성적 판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정 기억의 서랍을 엽니다. 이것을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라고 합니다. 마들렌 쿠키 향기에서 어린 시절이 통째로 펼쳐지던 소설 속 장면처럼.
5,500년 동안 한반도 부엌에서 가장 마지막에 뿌려지던 기름. 그 냄새가 지금 우리 코에 새겨져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오십보의 정리
참기름 한 병 안에는 세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5,500년의 시간입니다. 인더스 문명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한반도까지 흘러온 씨앗 하나의 여정입니다.

둘째는 자급률 8%의 현실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기름이, 원료의 90% 가까이를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공급망이 흔들리면 밥상 위 마침표가 흔들립니다.
셋째는 프리미엄의 가능성입니다. 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국산 참깨·전통 방식·소농 직판이라는 테루아 전략이 조용히 시장을 열고 있습니다.
다음에 주방 선반에서 그 작은 갈색 병을 꺼낼 때, 두어 방울 더 천천히 뿌려보시길 권합니다.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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