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식탁 | 낙농의 경제학 3편] 버터 대란이 반복되는 이유 — 가공유제품 시장의 구조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낙농의 경제학 1편] 저지 섬의 갈색 소**에서 품종에 따라 우유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낙농의 경제학 2편] 흰 우유 한 잔이 식탁에 오기까지**에서는 원유 1,084원이 우유 한 팩 1,500원이 되기까지 누구의 손을 거치는지를 들여다봤습니다.
오늘은 그 원유가 흰 우유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읽겠습니다.
마트 진열대에서 버터가 사라졌던 그 날을 기억하시나요? 우유는 넘쳐나는데, 버터는 왜 품귀 현상이 반복될까요? 그리고 창고에는 분유가 썩어가고 있습니다. 같은 원유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버터는 왜 이렇게 비싼가 — 구조로 보는 가격
버터가 비싼 이유는 단순한 물리 법칙에서 출발합니다. 원유에서 버터를 만들려면 먼저 원심분리기로 지방(크림)을 추출하고, 이를 교반(churning)해 지방 분자를 응집시켜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방 성분만 살아남고, 나머지 수분·단백질·유당은 버터밀크(buttermilk)로 분리됩니다.

버터의 지방 함량은 약 80% 이상. 원유의 평균 지방 함량은 약 3.5~4%입니다. 버터 500g 한 덩이를 만들려면 원유가 약 10~11리터 필요합니다. 여기에 크림 분리·살균·교반·포장 공정 비용이 더해지면, 국산 원유(1,084원/ℓ 기준)만 따져도 원료비만 약 11,000~12,000원이 됩니다.
구분 수치
| 버터 500g 생산에 필요한 원유 | 약 10~11리터 |
| 한국 원유 고시가(2024) | 1,084원 / ℓ |
| 원료비만 계산한 원가(500g) | 약 10,800~12,000원 |
| 마트 국산 버터 판매가(500g 기준) | 약 12,000~15,000원 |
| 수입산 버터 판매가(500g 기준) | 약 6,000~9,000원 |
국산 버터는 원가 대비 마진이 거의 없는 구조이고, 수입산은 원유 생산비가 낮은 뉴질랜드·EU산 크림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절반 가격에 진열될 수 있습니다. "국산보다 수입산이 싸다"는 역전 현상은 구조적으로 예정된 결과입니다.
2023~2024년 버터 대란 — 품귀의 진짜 원인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국내 마트에서 버터 품귀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우유가 남아도는데 왜 버터가 없냐"는 목소리가 쏟아졌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 낙농 구조의 핵심 아이러니입니다.

원인은 세 가지가 겹쳤습니다.
첫째, 전 세계 버터 가격 급등입니다. 글로벌 유제품 거래(GDT) 경매에서 버터 가격은 2024~2025년에 걸쳐 톤당 7,220달러를 넘어서며 2년 전보다 54% 급등했습니다. EU와 뉴질랜드의 기상 이변으로 생산량이 줄었고, 국제 가격이 오르면서 수입 단가도 덩달아 올랐습니다.
둘째, 한국 고시제의 경직성입니다. 국내 유업체들은 원유를 고시가(1,084원/ℓ)에 의무 매입해야 하므로, 버터를 국산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입니다. 대형 유업체들이 버터 생산을 줄이고 시유·요거트 등 수익성 높은 제품에 집중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셋째, 가공유(유크림) 수입 규제입니다. 버터 원료인 수입 유크림에는 관세가 부과되어 수입산 완제품 버터보다 원료 수입이 오히려 비쌌습니다. 국내에서 만들어도, 원료를 수입해도 구조적으로 손해인 셈이었습니다.
핵심 역설은 이것입니다. 원유는 남아도는데, 버터는 부족합니다. 이유는 하나 — 남아도는 원유를 버터로 전환하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가격 구조입니다.
유가공 산업 지도 — 우유 한 방울이 어디로 흘러가나
국내산 원유의 사용처를 보면 한국 낙농 산업의 전략적 취약점이 드러납니다.

용도 국내산 원유 사용 비율 핵심 구조 이슈
| 시유(흰 우유 등) | 약 71% | 소비 감소 + 2026 무관세 위기 |
| 발효유(요거트 등) | 약 22% | 국산 브랜드 경쟁 중 |
| 치즈 | 약 4% | 수입 의존도 80~90%, 가격 경쟁 불가 |
| 탈지분유 | 약 1% (생산은 과잉) | 재고 1만 톤대 과잉, 수입산의 4~5배 비쌈 |
| 전지분유 | 소량 | 아이스크림·제과용 |
| 버터·크림 | 나머지 | 생산 기피 → 품귀 반복 |
원유의 70% 이상이 마시는 우유(시유)로 소비되는 구조입니다. 치즈는 소비량 기준으로 10년간 2배 이상 성장했지만, 국내 생산은 약 3만 9천 톤에 그쳐 약 15만 톤 이상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자연치즈 기준 수입 의존도는 80~90% 수준입니다. 고원가 국내 원유로는 수입산 치즈와 가격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국산 치즈는 '프리미엄·목장형·지역 테루아 브랜드' 전략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분유는 왜 두 종류인가 — 전지분유 vs 탈지분유
분유라고 하면 흔히 아기 조제분유를 떠올리지만, 식품 산업에서 분유는 훨씬 넓게 쓰이는 핵심 원료입니다. 분유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전지분유(Whole Milk Powder, WMP)**와 **탈지분유(Skim Milk Powder, SMP)**입니다.

전지분유는 원유 전체를 그대로 고온 건조해 수분만 날린 것이고, 탈지분유는 원유에서 지방을 먼저 분리(크림·버터 원료로 활용)한 뒤 남은 탈지유를 건조한 것입니다. 버터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이 탈지분유의 출발점입니다. 버터와 탈지분유는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원유에서 갈라지는 쌍둥이 부산물입니다.
구분 전지분유 (WMP) 탈지분유 (SMP)
| 원료 | 원유 전체 건조 | 지방 제거 후 탈지유 건조 |
| 지방 함량 | 25~42% | 1% 이하 |
| 칼슘 함량 | 약 900mg/100g | 약 1,300mg/100g |
| 주요 용도 | 밀크 초콜릿, 아이스크림, 커피믹스, 제과·제빵, 이유식 | 빵·과자 반죽, 요거트, 조제분유 베이스, 단백질 보충제 |
| 맛 특성 | 고소하고 진한 유지 풍미 | 담백하고 깔끔, 단백질·칼슘 풍부 |
제과·제빵 현장에서 탈지분유가 더 자주 쓰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탈지분유는 지방이 없어 반죽의 수분 조절과 단백질 강화에 유리하고, 유통기한도 전지분유보다 깁니다. 반면 아이스크림이나 밀크 초콜릿처럼 풍부한 유지 풍미가 핵심인 제품에는 전지분유가 사용됩니다.
한국 탈지분유 재고의 역설 — 넘쳐나는데, 팔리지 않는 이유
버터가 품귀인 것과 정반대로, 탈지분유는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습니다.

축산신문 보도에 따르면 2025년 3월 분유 재고는 1만 2,000~1만 3,000톤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여름철 생산 조절 노력으로 이후 1만 1,000톤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소비 감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재고 소진은 여전히 난항입니다.
이유는 가격 때문입니다. 국산 탈지분유는 kg당 약 12,000원 수준인 반면, 수입산 탈지분유는 약 2,300~3,000원 수준입니다. 국산이 수입산보다 4~5배 비쌉니다. 아이스크림 공장, 제과업체, 커피믹스 제조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입산을 선택합니다.
이 상황이 버터 품귀와 연결되는 고리가 흥미롭습니다. 버터를 만들면 탈지분유가 부산물로 함께 생산됩니다. 그런데 탈지분유 재고가 이미 넘쳐나는 상황에서 버터를 더 만들면 탈지분유도 더 쌓입니다. 유업체 입장에서는 버터 생산을 늘릴 이유가 이중으로 없습니다. 탈지분유 과잉이 버터 품귀를 구조적으로 고착화시키는 악순환입니다.
구조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버터 생산을 늘리면 탈지분유도 같이 늘어나 재고가 더 쌓이고 손해가 납니다. 그러니 버터 생산을 기피하고, 버터 품귀가 반복됩니다.
분유 산업의 미래 — 저출산 시대, 분유는 어디로 가나
한국 낙농에서 분유 비중은 전체 원유 사용량의 약 1%에 불과합니다. 저출산으로 조제분유 수요가 급감한 데다, 식품 제조업체들은 저렴한 수입산 탈지분유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매일유업은 2026년에 원유계약물량을 30% 감축하겠다고 통보한 상태입니다.
반대로 성인용 단백질 분유, 스포츠 영양 제품, 시니어 영양식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매일유업이 '어른들의 단백질 우유' 라인에 집중하고, 일동후디스·남양유업이 성인용 분유 시장을 확장하는 것이 이 흐름을 반영합니다. 분유 산업이 '영아 → 성인·시니어'로 타깃을 이동하는 대전환기입니다.
서울우유·남양유업·매일유업 3사 구도 — 2025년 성적표
2025년 기준 국내 유업계는 '빅3'의 구도가 재편되는 중입니다.
회사 2025년 매출(추정) 영업이익 시장점유율(시유) 생존 전략
| 서울우유 | 약 2조 1,008억 원 | 흑자 유지 | 약 44.9% (1위) | 국산 프리미엄, 수출 확대 |
| 매일유업 | 약 1조 8,435억 원 | 453억 원(3Q 누적) | 약 17.6% (2위) | 웰빙·고부가가치 전환 |
| 남양유업 | 약 9,141억 원 | 52억 원 (흑자전환) | 약 10.2% (3위) | 비용절감 후 재건 중 |
2026년이 분수령입니다. EU·미국산 멸균우유·치즈에 대한 관세가 사실상 0%로 전환되는 시점이어서, 국내 유업계는 현재 '무관세 시대 생존 전략'을 마련하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우유는 '국산 원유 100%'와 수출 다각화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고, 매일유업은 '어른들의 단백질 우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 포트폴리오로 전환 중입니다. 남양유업은 2025년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체력 회복 중입니다.
버터빵과 쿠아망의 경제학
쫀쿠의 버터빵 시리즈, 쿠아망을 한 입 베어물 때마다 녹아드는 그 풍미의 정체가 바로 오늘 다룬 구조입니다. 버터 한 조각에 녹아 있는 것은 원유 10리터의 지방, 낙농가의 새벽, 그리고 국제 원유 시장의 파동입니다.
프랑스 크루아상에 들어가는 발효버터가 비싼 이유, 일본 홋카이도 버터가 프리미엄인 이유가 이제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지 않으신가요?
**[브랜드 프리미엄 2편] 성심당 — 지역 집중이 전략이다**에서 배운 것처럼, 가격 경쟁이 아닌 경험 경쟁으로 판을 바꾸는 것이 수입산이 따라오기 어려운 해자가 됩니다. 국산 버터가 살 길도 결국 같은 방향입니다.
오십보의 정리
버터 대란은 하나의 증상입니다. 진짜 병명은 '원유 고시가 구조 + 가공유제품 경쟁력 부재 + 수입 의존 심화'의 삼중 구조입니다. 흰 우유를 마시는 사람은 줄고, 치즈·버터·요거트 소비는 늘지만, 그 수요를 국내 낙농이 채우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2026년 무관세 시대, 한국 낙농은 어디로 갈까요? 다음 편에서는 낙농 강국 뉴질랜드·아일랜드의 전략과 한국 낙농의 생존 시나리오를 다뤄보겠습니다.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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