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 사람들 7편] 인도·파키스탄 — 5주 만에 그은 선이 1,400만 명을 움직였다
"선을 긋는 사람들" 일곱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편은 조금 다릅니다.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그 비극이 오늘 우리 식탁 위에 어떻게 올라와 있는지까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오늘의 장면 — 와가 국경의 저녁 의식
매일 해질 무렵,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도시 와가(Wagah)에서는 양국 군인들이 마주 보고 서서 다리를 높이 들어올리며 행진하는 의식이 열립니다. 관중석은 수천 명으로 가득 차고, 국경 철문이 닫히는 순간 하루가 끝납니다.

이 의식이 열리는 길의 이름은 그랜드 트렁크 로드입니다. 무굴 제국 때부터 인도 아대륙을 하나로 잇던 길입니다. 1947년 이전, 이 길 위에는 국경이 없었습니다. 그 국경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주였습니다.
선은 어떻게 그어졌나 — 5주, 그리고 인도를 몰랐던 변호사
1947년 7월, 영국은 인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습니다. 영국 의회는 법학자 시릴 래드클리프 경을 국경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인도를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펀자브와 벵골, 두 거대한 주를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5주. 나눠야 할 땅은 약 17만 5천 평방마일, 그 위에 사는 사람은 약 8,800만 명이었습니다.
원칙은 단순했습니다. 무슬림이 많으면 파키스탄, 힌두교도가 많으면 인도. 하지만 펀자브에는 힌두교도도, 무슬림도, 시크교도 수백만 명도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선이 공표된 것은 1947년 8월 17일, 인도 독립(8월 15일) 이틀 뒤였습니다. 독립을 먼저 선언하고, 국경은 나중에 알린 셈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래드클리프는 선이 공표된 당일 인도를 떠났고 두 번 다시 그 땅을 밟지 않았으며, 받기로 했던 보수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현지인은 어디에 있었나 — 짐을 챙길 시간조차 없었다
선이 발표되자 펀자브 전역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파키스탄이 된 땅의 힌두교도·시크교도들은 인도로, 인도가 된 땅의 무슬림들은 파키스탄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짐을 챙길 시간도, 재산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지는 피난민 행렬이 만들어졌습니다. 국가 간 전쟁이 선포된 것은 아니었지만, 분단 과정에서 광범위한 지역 폭력과 학살이 분출했습니다. 연구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이동한 인구는 1,400만에서 1,800만 명,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00만에서 200만 명에 이릅니다.

시크교의 성지 황금 사원이 있는 라호르도 파키스탄 땅이 되었습니다. 시크교도들은 자신의 성지가 있는 땅에서 난민이 되어 쫓겨났습니다.
선이 만든 결과 — 비극이 차려낸 한 끼
여기서 이 시리즈가 처음 다루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선이 만들어낸 것이 비극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펀자브 출신 난민들은 델리 곳곳에 식당을 차렸습니다. 현재의 파키스탄 땅인 페샤와르에는 분단 이전부터 '모띠 마할(Moti Mahal)'이라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서 쿤단 랄 구즈랄이라는 인물이 요구르트와 향신료에 재운 닭을 진흙 화덕(탄두르)에 구운, 오늘날 '탄두리 치킨'의 원형을 만들었습니다. 분단이 되자 그는 델리 다르야간즈에 모띠 마할을 다시 열었고, 이곳에서 탄두리 치킨이 오늘날 알려진 방식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모띠 마할의 명성은 빠르게 퍼져, 초대 총리 네루의 국빈 만찬에까지 이 식당의 주방장들이 불려갔다고 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팔고 남은 탄두리 치킨을 버리기 아까워 토마토·버터·크림을 넣고 졸인 것이 버터 치킨이 되었습니다.
이 흐름은 영국까지 이어집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는, 1970년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파키스탄계 이민자가 운영하던 식당(시시 마할)에서 한 손님의 요청을 계기로 치킨 티카 마살라가 탄생했습니다. 정확한 기원에는 여러 논쟁이 있지만, 남아시아 이민자들이 영국에서 현지 입맛에 맞게 변형한 요리라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입니다. 오늘날 영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로 꼽힙니다.
해외 '인도 레스토랑'에서 파는 메뉴 상당수는 사실 인도 전체가 아니라 펀자브 지방 음식입니다. 탄두리 치킨, 버터 치킨, 난, 달 마크니 — 분단으로 델리에 흘러든 난민들의 화덕에서 시작된 요리들이, 전 세계 '인도 음식'의 표준이 됐습니다.
오늘의 질문 — 선은 음식도 나누는가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금도 카슈미르를 두고 대립하고 있고, 두 나라 모두 핵무장 국가입니다. 그런데 국경 양쪽에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탄두리 치킨은 인도 음식일까요, 파키스탄 음식일까요. 정확히는 분단 이전 펀자브 사람들의 음식이었습니다.

선은 땅을 나눴고 사람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입맛까지는 나누지 못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다시 지도 위의 선으로 돌아가, 30분 만에 그어진 한반도 38선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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