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참외 — 인도에서 출발해 고려 청자가 되고, 일본 이온마트에 도착한 노란 여름의 경제학
안녕하세요, 오십보입니다.
여름 과일 가게 앞을 지나다 문득 멈추게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수박의 초록 줄무늬도 아니고, 복숭아의 복슬복슬한 표면도 아닙니다. 쨍한 노란색 껍질에 하얀 줄이 또렷하게 그어진, 손에 꼭 들어오는 크기의 과일. 참외입니다.

가격표를 확인하기도 전에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향이 먼저 오기 때문입니다. 달콤하면서도 풋풋하고, 메론보다는 수수하고 오이보다는 귀한 그 냄새. 한국 여름의 냄새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노란 과일이 조용히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일본 이온마트, 돈키호테, 마키야 매장에 'Korean Melon'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진열대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 2025년 사이 일본 수출액이 약 3.4배, 수출량은 약 4.4배 증가했습니다. 한국산 참외는 지금,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K-프루트입니다.
오늘 펜트리에서는 이 노란 과일 한 알 속에 담긴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 보겠습니다. 씨앗이 인도에서 출발한 이야기, 고려 장인이 그 모양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우리 토종 참외의 이야기까지.
◼ 씨앗은 인도에서 왔다 — 참외의 전파 경로
참외의 학명은 멜론 종(Cucumis melo) 안의 오리엔탈 멜론(makuwa 계열)입니다. 오이, 수박, 호박과 같은 박과(Cucurbitaceae) 식물로, 흔히 '오리엔탈 멜론(Oriental Melon)'이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아는 허니듀 멜론, 칸탈루프 멜론과 같은 종이지만 다른 품종군에 속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촌지간입니다.

씨앗의 출발지는 동부 인도 혹은 동남아시아 일대로 추정됩니다. 참외 계열의 오리엔탈 멜론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온 것은 고대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멜론류는 황실과 상류층이 즐기던 여름 과일로 기록되며, 그 계통 가운데 오늘날 참외와 유사한 품종도 포함됩니다.
한반도에 참외가 들어온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에 중국 화북 지방에서 만주를 거쳐 들어왔다는 설이 유력하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이미 재배가 일반화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에 먼저 재배가 시작된 뒤 조선으로 건너왔다는 우회 전래설도 함께 전해집니다.
◼ 이름 이야기 — '참-외'란 무엇인가
한국어에서 참외라는 이름은 두 글자가 합쳐진 말입니다. '참(眞)'은 '진짜', '으뜸', '진정한'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접두어입니다. '외'는 '오이(cucumber)'의 준말입니다. 즉 참외 = 진짜 오이, 오이 중의 오이, 으뜸 박과 과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법은 한국어 특유의 어휘 조어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참기름'이 기름 중에서도 진짜 값어치 있는 기름이라는 뜻을 담듯, '참외'도 박과 과일 중 가장 귀히 여기던 과일이라는 위상을 이름 자체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언어가 사물의 서열을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중국에서는 단맛 나는 멜론류를 첨과(甛瓜)라 부르며, 그 안에 참외 계열 품종도 포함됩니다. 일본어로는 마쿠와우리(まくわうり, 真桑瓜)로 불렸습니다. 영어권에서는 'Korean Melon', 'Oriental Melon'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지금 일본 마트에서 팔리는 수출용 참외 패키지에는 대개 'Korean Melon'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름이 원산지 브랜드가 된 셈입니다.
◼ 우리가 잊고 있던 참외 — 개구리참외와 사라진 토종들
지금 우리가 아는 노랗고 하얀 줄무늬의 참외는 사실 참외 역사에서는 비교적 최근 얼굴입니다.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別乾坤)』에는 알록달록한 개구리참외, 겉이 노란 꾀꼬리참외, 색깔이 검은 먹통참외, 속이 빨간 감참외, 모양이 길쭉한 술통참외, 배꼽이 나온 배꼽참외, 둥그런 수박참외까지 다양한 재래종 참외가 소개돼 있습니다. 쥐똥참외라는 것도 있었는데, 맛이 없어 아이들이 장난감으로만 갖고 놀았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지금의 획일적인 노란 참외와는 전혀 다른 풍경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것이 개구리참외입니다. 성환참외라고도 불리는 이 참외는 1926년 충남 천안 성환읍 일대에서 첫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청개구리를 닮은 초록빛에 울퉁불퉁한 껍질이 특징이고, 지금의 참외보다 훨씬 크고(800~1,000g), 과육도 3cm 정도로 두껍습니다. 속살은 불그스레한 빛을 띱니다.
맛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노란 참외보다 확실히 덜 달았습니다. 당도가 7~8브릭스 수준으로, 요즘 참외들이 흔히 그 이상의 당도를 내는 것과 비교하면 수수한 편입니다. 대신 탄수화물과 칼슘, 비타민 A·B2·C 함량이 일반 참외보다 두 배가량 높아 숙취 해소와 이뇨 작용에 좋은 것으로 알려지며, 어른들이 술자리 뒤 즐겨 찾던 과일이었습니다.
1950년대까지는 개구리참외를 비롯한 강서참외, 감참외, 골참외, 줄참외, 노랑참외 같은 재래종들이 여러 지역에서 나란히 재배됐습니다. 그런데 1957년 일본에서 은천참외 품종이 들어오면서 흐름이 완전히 바뀝니다. 재배가 쉽고 병에 강하며 무엇보다 훨씬 달았던 이 노란 품종이 빠르게 재래종들을 밀어냈고, 1975년 신은천참외, 1984년 금싸라기참외, 2003년 오복꿀 같은 개량종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지금의 '노란 참외 = 참외'라는 공식이 굳어졌습니다. 개구리참외는 196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
다행히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2015년 천안배원예농협이 지역 특산물 육성 차원에서 농가와 계약재배를 시작하며 개구리참외가 다시 시장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맛보다 기능성을 앞세운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100년 전 여름 과일이 다시 조명받는 셈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먹는 '달고 노란 참외'가 사실은 오랜 품종 개량과 시장 경쟁의 결과물이었다는 걸, 개구리참외의 역사가 보여줍니다.
◼ 참외와 메론, 무엇이 다른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허니듀 멜론과 참외를 나란히 두면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먹는 경험은 꽤 다릅니다.
크기와 모양에서 참외는 손에 꼭 쥐어지는 타원형입니다. 노란 껍질에 하얀 줄이 세로로 그어진 것이 대표적인 외관입니다. 허니듀나 칸탈루프는 참외보다 훨씬 크고, 껍질 색도 연초록이나 황갈색이 많습니다.
맛과 식감에서 차이가 더 도드라집니다. 서양 멜론은 당도가 높고 향이 진하며 물렁물렁한 식감으로 그 자체로 진한 디저트 경험을 줍니다. 반면 참외는 수분이 많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습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더운 여름날 물 대신 먹는 과일"로 참외를 즐겨온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먹는 방법도 다릅니다. 서양 멜론은 대개 껍질을 두껍게 도려내고 씨를 완전히 제거한 뒤 속살만 먹습니다. 참외는 껍질을 얇게 벗기고 씨 부분도 함께 먹는 문화가 있습니다. 씨 주변의 하얀 과육 부분이 가장 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씨를 버리지 않습니다.
◼ 조선 백성의 여름을 함께한 과일
우리 역사 속에서 참외의 자리는 꽤 독특합니다.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 저자는 조선인이 참외를 가장 즐기는 과일로 폭식한다고 기록했을 만큼, 당시 외국인의 눈에도 참외가 '조선 사람의 여름 과일'로 선명하게 각인돼 있었습니다.
참외는 조선시대에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즐겨 먹던 과일이었습니다. 양반 가문의 제사상에도 올랐고, 보릿고개를 겨우 넘긴 서민 백성에게는 가을 벼가 익기 전 부족한 식량을 메워주는 값싼 여름 양식이기도 했습니다.
궁중에서도 참외는 귀한 대접을 받아 음력 4월쯤부터 경작해 여름 내내 상에 올렸습니다. 참외밭을 지키는 원두막이 생겨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참외가 귀하니 서리도 잦았고, '참외 서리'라는 말이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은 그 여름 농촌 풍경의 기억이 언어 속에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 고려 청자가 참외를 담은 이유
참외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예술 모티프가 된 흔적이 있습니다. 바로 청자 참외모양 병(靑磁 瓜形 甁)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이 청자는 참외 모양의 몸체에 참외꽃을 입 부분으로 삼고 굽다리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고려 청자 최성기인 12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인종의 왕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높이는 약 20cm대로, 고려 비색(翡色)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왜 참외 모양이었을까요. 참외가 가진 형태, 위아래가 적당히 팽팽하고 중간이 잘록하며 세로 선이 또렷한 그 형상은 도자기 조형에서 이상적인 비례감을 구현합니다. 고려의 장인이 여름마다 보아온 그 과일 한 알에서 명품 청자의 형태를 발견했다는 것이, 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조선시대 민화와 풍속화에서도 참외는 박과 과일의 대표로 등장합니다. 씨가 많은 박과 과일이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다산(多産)의 상징이 된 것은 동아시아 화조화(花鳥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징 체계입니다.
◼ 참외로 만든 음식들 — 냉국부터 피클까지
참외는 생으로 먹는 것이 가장 흔하지만, 전통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되어 왔습니다.
참외냉국은 여름 별미 중 하나입니다. 달달한 참외를 아삭한 오이와 함께 얼음 간장 국물에 말아 먹는 이 음식은 더위를 식히는 방식으로는 아이스크림 못지않습니다. 참외오이무침은 얇게 썬 참외와 오이에 홍고추와 유자청을 더한 상큼한 반찬으로, 재료는 단순하지만 맛의 층이 깊습니다.
현대 디저트로도 참외는 활발하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참외 빙수, 참외 스무디, 참외 샐러드, 참외 피클까지. 참외를 올리브오일과 레몬즙 드레싱에 버무린 샐러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전채 요리 못지않은 비주얼과 맛을 냅니다.
◼ 성주참외의 경제학 — 단일 작목의 지역 경제
한국에서 참외 하면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경북 성주입니다. 성주는 전국 참외 생산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산지입니다. 단일 시군에서 단일 작목만으로 수천억 원 규모의 지역 경제를 만들어내는 이 구조는, 농업 브랜드 사례 중에서도 이례적입니다.
2020년대 기준 성주군의 참외 재배 면적은 3,000헥타르 안팎, 생산량은 수십만 톤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주참외는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된 지역 브랜드로, '성주 = 참외'라는 공식이 소비자 인식 속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이 구조는 이 시리즈에서 다룬 올리브유의 PDO(원산지 보호 명칭) 인증과 닮아 있습니다. 원산지가 품질 보증이 되고, 품질 보증이 프리미엄 가격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올리브유 PDO가 유럽 연합 차원의 법적 보호를 받는 것과 달리, 성주참외의 브랜드 가치는 아직 해외 시장에서는 충분히 인지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출 성장이 가진 기회이기도 합니다.
◼ 이온마트에 도착한 노란 과일 — K-참외의 현재
2026년 여름, 일본 이온(AEON), 돈키호테, 마키야 등 일본 전국 주요 유통 채널에 한국산 참외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등 수출 통계(2026년 4월 기준)를 보면 숫자는 이렇습니다.

- 2025년 대일 참외 수출액 약 105.5만 달러(전년 대비 +31.4%), 수출량 약 271톤(+39.0%)
- 2022년 대비 2025년 수출액은 약 3.4배, 수출량은 약 4.4배 증가
- 2026년 4월까지 누적 수출액은 약 49만 2,700달러, 수출량 99톤으로 전년 대비 각각 32.2%, 37.1% 증가
성장세가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시장에서 참외는 'Korean Melon'이라는 이름으로 포지셔닝됩니다. 일본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머스크 멜론이나 허니듀에 비해 작고, 손질이 간편하며,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향이 있다는 점이 차별화 요소로 부각됩니다. 일본의 1인 가구 증가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집니다.
◼ 오십보의 정리
참외 한 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긴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씨앗 하나가 인도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건너와 조선 백성의 여름을 함께 버텼습니다. 고려의 장인은 그 과일의 형태에서 청자 한 점의 조형 언어를 발견했고, 100년 전에는 알록달록한 개구리참외·꾀꼬리참외·감참외가 저마다의 개성으로 여름을 채웠습니다. 지금은 그 다양성이 노란 참외 하나로 좁혀졌지만, 경북 성주 땅에서 대규모로 생산되어 서울 마트와 일본 이온마트 진열대에 함께 오르고 있습니다.
이 과일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맛이나 영양 때문이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한반도 여름과 가장 밀착되어 있었다는 것, 왕의 상에도 오르고 백성의 끼니도 되었다는 것, 그 형태가 국보 청자의 틀이 될 만큼 아름다웠다는 것, 그리고 한때는 지금보다 훨씬 다채로운 얼굴을 갖고 있었다는 것. 참외는 먹거리이면서 동시에 한국 여름의 문화 그 자체입니다.
다음에 여름 과일 가게 앞에서 참외를 집어 들 때, 이 긴 여정을 한 번쯤 떠올려보시길 권합니다.
오늘도 한 걸음, 오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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