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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식탁

[콩의 경제학 1편] Bean과 Pea는 왜 다른 이름을 가졌나 — 콩을 부르는 세계의 말들

by 오십보 백보 2026.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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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의 경제학 1편] Bean과 Pea는 왜 다른 이름을 가졌나 — 콩을 부르는 세계의 말들

 

 

 

마트 채소 코너에 서 보겠습니다. 완두콩, 강낭콩, 검은콩, 렌틸콩, 병아리콩, 대두. 라벨에는 모두 '콩'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라벨을 보면 달라집니다. Pea, Kidney Bean, Black Bean, Lentil, Chickpea, Soybean. 어떤 것은 Bean이고 어떤 것은 Pea이며 어떤 것은 Lentil입니다. Chickpea는 왜 Pea인데 앞에 Chick이 붙어 있을까요. 대두는 왜 Soy라고 부를까요.

마트 채소 코너를 배경으로 완두콩, 강낭콩, 렌틸콩, 병아리콩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모든 콩의 한국어 라벨에는 '콩'이라는 글자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그 위로 투명한 오버레이 효과를 통해 해당 콩의 영어 이름(Pea, Kidney Bean, Lentil, Chickpea)이 각각 다르게 표시되어, 한국어와 영어의 명명 방식 차이를 직관적으로 대비시킵니다. (심볼릭 인포그래픽)
마트 선반 위, 하나인 듯 다른 콩들의 이름

 

한국어는 그 모든 것을 '콩'이라는 한 단어로 품어 안습니다. 영어는 그 안을 여러 이름으로 나눕니다. 이 차이가 사소해 보이지만, 실은 수천 년에 걸친 농업의 역사와 언어의 이동, 그리고 어느 대륙에서 어느 콩을 먼저 만났는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콩의 경제학 시리즈의 첫 편입니다. 오늘은 경제 이야기보다 한 발 더 앞으로 갑니다. 이 작은 씨앗들을 세계가 어떻게 불렀는지, 그 이름들의 뿌리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식물학의 언어 — Fabaceae라는 하나의 집

모든 '콩류'는 하나의 거대한 식물 가족에 속합니다. 콩과(科), 학명 Fabaceae 또는 Leguminosae입니다. 현화식물 중 손꼽히게 큰 과(科)로, 전 세계에 750속(屬) 2만 종 이상이 속해 있습니다. 클로버, 아카시아, 땅콩, 완두, 대두, 렌틸, 강낭콩 — 모두 이 하나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콩과 식물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개념적 일러스트입니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고, 그 뿌리에는 라틴어 학명 'Fabaceae(Leguminosae)'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무의 가지마다 클로버, 아카시아, 땅콩, 완두, 대두, 렌틸, 강낭콩의 잎과 꽃, 꼬투리가 달려 있어 이 모든 식물이 하나의 거대한 식물학적 가족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식물학 인포그래픽)
식물학 — 거대한 콩과(Fabaceae)라는 하나의 집

 

Fabaceae라는 이름의 뿌리는 라틴어 faba, 즉 잠두콩(field bean, Vicia faba)입니다. Leguminosae라는 옛 이름도 쓰이는데, 이쪽의 어원은 라틴어 legere, "모으다"입니다. 꼬투리 안의 씨앗을 손으로 하나씩 모아 수확하는 모습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콩과 식물이 Legume이라면, 그 씨앗을 말린 것이 Pulse

 

이 가족 안에서 우리가 "콩"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층위가 나뉩니다. Legume은 콩과 식물 전체를 가리킵니다. 잎, 줄기, 꼬투리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Pulse는 그중에서도 건조 상태로 수확해 식용으로 쓰는 씨앗만을 가리킵니다. FAO(유엔식량농업기구)의 정의에 따르면, 신선한 완두콩은 채소(Legume)이지만 말린 완두콩은 펄스(Pulse)가 됩니다. 콩과 식물이 Legume이라면, 그 씨앗을 말린 것이 Pulse입니다. Bean, Pea, Lentil은 이 Pulse와 Legume의 세계 안에서 더 구체적인 이름들입니다.


Bean의 뿌리 — 게르만족이 오래 불러온 이름

영어 Bean은 현존하는 어원 중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하게 퍼진 콩 이름 중 하나입니다.

 

고대영어 bēan, 고대고지독일어 bōna(현대독일어 Bohne), 중세네덜란드어 bone(현대 Dutch boon), 고대노르드어 baun — 게르만어파 전체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로 발견됩니다. 공통 게르만조어(Proto-Germanic) 형태는 *bauno-로 재구성되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인도유럽조어 *bhabh-에 닿는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의미는 "부풀어 오른 것, 부풀다"입니다. 꼬투리 안에서 씨앗이 팽팽하게 부푸는 모양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명이 유력합니다.

부풀어 오르는 잠두, Bean의 뿌리를 찾아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슬라브어권에서 콩을 가리키는 단어, 러시아어 bob, 폴란드어 bób, 세르비아어 bob도 같은 인도유럽조어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야 합니다. Bean이라는 단어가 수천 년 전 게르만족에게 가리킨 것은 오늘날 우리가 Bean의 대표로 떠올리는 강낭콩(Phaseolus vulgaris)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잠두(Vicia faba), 즉 유럽 원산의 커다란 콩이었습니다. 강낭콩은 아메리카 원산으로, 유럽에 들어온 것은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입니다. 콜럼버스의 항해가 콩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을 바꾼 셈입니다. Bean이라는 단어는 그대로 있었지만, 그 단어가 지칭하는 콩의 주인공이 조용히 교체됐습니다.


Pea의 이야기 — 오해에서 탄생한 단수형

Pea의 어원은 Bean보다 훨씬 긴 경로를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경로에 언어학적으로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끼어 있습니다.

 

출발은 라틴어 pisum, 그리스어 pison입니다. 이 단어가 중세 영어로 들어올 때 pease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pease는 복수형처럼 들렸습니다. -se로 끝나는 단어는 영어에서 복수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7세기경 사람들이 "pease의 단수는 pea겠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pea라는 단수형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pease 자체가 단수였는데, 복수로 착각해서 만들어낸 가짜 단수 — 언어학에서는 이것을 역형성(back-formation)이라고 부릅니다.

역형성으로 탄생한 가짜 단수, Pea의 언어적 사건

 

동요 「Pease Porridge Hot」의 pease가 바로 그 옛 형태입니다. 이 동요를 부를 때 우리는 수백 년 전 영어 화자들이 완두죽을 먹으며 불렀을 단어의 흔적을 만지는 셈입니다.

 

Pea라는 단어가 하나의 특정 콩류를 가리키게 된 것도 역사적 우연의 산물입니다. 유럽인들이 완두(Pisum sativum)를 가장 일찍, 가장 많이 먹었기에 pea = 완두가 됐습니다. 그리고 멘델이 수도원 뒤뜰에서 심은 것이 바로 이 Pea, 완두콩입니다. 멘델의 유전 법칙 전체가 pea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이 작은 콩 위에서 시작됐습니다.


Soy의 길 — 간장에서 태어난 콩의 이름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콩은 단연 대두(大豆, soybean)입니다. GMO의 경제학 5편에서 다뤘듯, 한국은 대두 상당량을 GMO로 수입합니다. 그런데 이 콩의 영어 이름 soy의 어원이 흥미롭습니다. 콩이 아니라 소스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콩(豆)' 하나로 통하는 동아시아의 명명법

 

경로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중국 장유(醬油, jiàngyóu) → 일본어 쇼유(醤油, shōyu) → 일본 가고시마 방언 soi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를 통한 유럽 전파 → 네덜란드어 soja → 영어 soy(1670년대 최초 기록). 즉, soy라는 단어는 콩 자체가 아니라 "콩으로 만든 짠 소스"를 먼저 가리켰습니다. soybean은 soy sauce를 만드는 bean, 이름이 역순으로 붙은 것입니다.

 

학명도 독특합니다. Glycine max. Glycine의 어원은 그리스어 glykys(달콤하다)입니다. 그런데 대두는 달지 않습니다. 이 이름은 대두가 속한 속(屬)인 Glycine이라는 이름에서 온 것인데, 18세기에 이 속에 속하는 다른 식물의 뿌리가 달콤한 액을 분비한다고 알려져 붙여진 이름이 대두에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과학적 명명이 항상 직관적이지는 않습니다.


한국어 '콩' — 순우리말이 한자를 품은 방식

이제 우리말로 돌아옵니다. 한국어 콩은 순우리말입니다. 한자가 아닙니다. 어원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유한 한국어 어휘로 콩과 식물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단어입니다. 완두도 콩, 강낭콩도 콩, 대두도 콩, 팥도 콩과 같은 층위에 있습니다.

'콩' — 순우리말이 한자를 품은 방식

그런데 한자 이름들은 정밀하게 구분합니다.

 

한자 발음 가리키는 것 비고

콩 일반(大豆·完豆·綠豆의 豆) 원래는 제기(祭器) 모양
콩과 식물 전반(고문헌 용어) 오곡(五穀) 중 하나
太/大 태/대 대두(大豆), 큰 콩 大豆(대두)

 

특히 豆(두)의 원래 뜻이 흥미롭습니다. 갑골문에서 이 글자는 굽이 높은 제사 그릇의 모양입니다. 원래는 그릇을 뜻했는데, 그 그릇에 제물로 콩을 담았기 때문에 나중에 콩을 가리키는 글자로 의미가 이동했다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大豆(대두)의 두, 完豆(완두)의 두, 綠豆(녹두)의 두 — 이 豆가 모두 원래는 그릇이었습니다.

 

강낭콩(江南豆)의 강낭(江南)은 "강의 남쪽", 중국 양자강 남쪽 지방을 가리킨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지방을 통해 들어온 콩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곧 이동 경로인 셈입니다. 반면 완두(完豆)의 '완(完)'은 어원이 한 가지로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온전하다"는 뜻에서 왔다는 설과 지명에서 왔다는 설이 함께 있어, 정확한 기원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세계의 언어가 콩을 부르는 방식

한 유럽 언어학 연구는 유럽 전역 언어에서 콩류 단어의 뿌리를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가 콩과 인류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세계의 언어가 콩을 부르는 방식

언어권 콩(Bean) 완두(Pea) 렌틸(Lentil) 특징

영어 bean pea lentil 각기 다른 뿌리
독일어 Bohne Erbse Linse bean과 동일 어원
프랑스어 haricot pois lentille haricot는 아즈텍어 ayacotl에서
스페인어 haba/judía guisante lenteja haba는 라틴어 faba
이탈리아어 fava/fagiolo pisello lenticchia fava는 라틴어 faba
러시아어 bob gorokh chechevitsa bob은 게르만 bean과 공통 조어
일본어 豆(まめ) グリーンピース レンズ豆 豆 하나로 포괄
중국어 豆(dòu) 豌豆(wāndòu) 扁豆 豆 하나로 포괄
한국어 완두콩 렌틸콩 콩 하나로 포괄

 

이 표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패턴이 있습니다. 유럽 언어들은 대체로 Bean, Pea, Lentil을 각기 다른 단어로 구분합니다. 반면 동아시아 언어들, 한국어·중국어·일본어는 모두 하나의 글자(豆, 콩)로 콩과 전체를 포괄하고, 그 앞에 수식어를 붙여 구분합니다. 어떤 콩을 먼저 만났는지, 그 콩이 식문화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했는지가 언어의 구조에 반영된 것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대두가 "콩 중의 콩"이었기에 콩이라는 포괄어가 곧 대두를 가리킬 수도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잠두(fava)가 오랫동안 기본 콩이었고, 신대륙에서 강낭콩(bean)이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대항해 시대 이전과 이후, 사람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기본 콩"이 달랐던 것입니다.


Legume, Pulse — 그리고 Bean과 Pea의 경계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정리하겠습니다. Bean과 Pea의 경계는 식물학적으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식물학자들은 이 두 단어가 과학적 분류가 아니라 일상 언어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합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크기와 모양으로 보는 Bean vs Pea의 일상적 구분

  • Bean: 대체로 크고, 납작하거나 신장(腎臟) 모양에 가까운 씨앗. 강낭콩·대두·잠두.
  • Pea: 대체로 작고, 둥근 형태. 완두·병아리콩(chickpea).

그런데 chickpea(병아리콩)는 이 기준조차 교란합니다. 완두보다 훨씬 크지만 이름에 pea가 붙어 있습니다. 이름의 앞부분 chick은 프랑스어 pois chiche, 이탈리아어 ceci에서 온 것으로, 라틴어 cicer에서 유래했습니다.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Cicero)의 성(姓)도 이 cicer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의 집안이 병아리콩을 재배하는 농부였다는 일화입니다.


그래서, 잭의 콩나무는 Pea일까 Bean일까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하나만 더 짚겠습니다. 동화 「잭과 콩나무」의 그 마법의 콩은 Pea일까요, Bean일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원전 영어 제목부터 이미 「Jack and the Beanstalk」이고, 본문에서도 줄곧 beans로 서술됩니다. 다만 이 콩이 식물학적으로 강낭콩인지 잠두인지까지 못박아 놓은 것은 아닙니다. 동화 속 마법 콩은 특정 종을 지정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콩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잭의 콩나무는 Pea가 아니라 Bean 계열의 "마법 콩"으로 보는 것이 원전에 더 충실한 해석입니다.

 

작은 동화 하나에서도, 콩의 이름이 가리키는 것이 이렇게 분명하게 갈립니다. 이름은 그 자체로 역사책입니다. 하나의 씨앗 이름 안에 언어의 이동, 무역로, 그리고 누가 어떤 땅에서 어떤 씨앗을 처음 만났는지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콩들 중 세계를 가장 크게 바꾼 콩, 대두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야생 대두가 어떻게 브라질 세하도를 뒤덮게 됐는지, 그리고 한국의 대두 수입 구조가 어떤 글로벌 공급망 위에 서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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