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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긋는 사람들

[선을 긋는 사람들 15편] 아르헨티나 — 이민자의 나라, 지워진 사람들의 땅

by 오십보 백보 202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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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긋는 사람들 15편] 아르헨티나 — 이민자의 나라, 지워진 사람들의 땅

여러분, "선을 긋는 사람들" 시즌2를 시작합니다. 지금부터는 선 자체보다, 그 선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어왔는지를 봅니다. 첫 나라는 시즌1을 열었던 바로 그 나라, 아르헨티나입니다.


오늘의 장면 — 매주 목요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 5월 광장(Plaza de Mayo)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30분이면 흰 머릿수건을 두른 노인들이 광장 중앙의 '5월의 피라미드' 주위를 천천히 걷습니다. 손에는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얼굴들, 지금이면 60대가 됐을 아들딸들의 얼굴입니다.

오월 광장의 끝나지 않은 행진 (

이 행진은 1977년에 시작됐고, 지금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월광장 어머니회(Madres de Plaza de Mayo)'입니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1976~1983년)가 '더러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좌파 인사와 반체제 인사를 납치·고문·살해하던 시절,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이 만든 단체입니다. 아르헨티나 진실규명위원회(CONADEP)가 조사해 확인한 사례는 8,961건이었지만, 오월광장 어머니회와 여러 인권단체는 실제 실종자가 약 3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합니다. 정확한 숫자가 확정되지 않은 이유 자체가 국가폭력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기록이 은폐됐고, 많은 시신과 출생기록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시즌1 프롤로그에서 아르헨티나를 스쳤습니다. 7월 9일 독립기념일, 리오데라플라타 강 어귀에서 탄생한 나라. 그런데 그 나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선은 어떻게 그어졌나 — '사막의 정복'과 이민자의 나라

아르헨티나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은 늘 비슷합니다. "우리는 이민자의 나라다." 이탈리아계, 스페인계, 독일계, 유대계가 뒤섞인 다민족 이민자 나라. 그런데 그 이민자들이 오기 전, 그 땅에는 누가 살았을까요.

 

1816년 독립 이후 아르헨티나 엘리트들의 최대 과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빈 땅을 채우는 것, 그리고 그 땅을 국가 영토로 확정하는 것. 문제는 그 땅이 진짜 빈 땅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파타고니아 초원과 팜파스 평원에는 마푸체족, 테우엘체족, 라니켈족 등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워진 땅의 주인들, '사막의 정복' 이전

1878년부터 1885년 전후까지, 훌리오 아르헨티노 로카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사막의 정복(Conquista del Desierto)'이라는 이름의 일련의 군사작전을 벌였습니다. 단일 전투가 아니라 여러 해에 걸친 국가 영토 확장 작전이었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들은 살해되거나 포로가 되거나 강제이주를 겪었고, 가족이 흩어진 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하인·강제노역자·종교기관 소속 등으로 배치됐습니다. 정확한 사망·포로 수는 자료마다 편차가 크고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원주민 지도자들의 유골이 '인류학 표본'이라는 이름으로 박물관에 전시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로카 장군은 이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됐습니다(1880~1886년, 1898~1904년). 그의 얼굴은 오랫동안 100페소 지폐에 실렸습니다.

 

원주민이 밀려난 그 땅에 유럽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1880년부터 1930년까지 약 600만 명의 이민자가 아르헨티나로 유입되며, 이 나라는 남미 최대의 이민 목적지 중 하나가 됐습니다. 다만 많은 이민자가 일시 체류 후 돌아가거나 다시 다른 나라로 이동했기 때문에, 유입 인원 전체를 최종 정착 인구와 동일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출신 비중은 압도적이었습니다. 1861년부터 1920년 사이 아르헨티나로 온 이민자 중 상당수가 이탈리아 출신이었고, "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탈리아어처럼 들리는 스페인어를 쓰는가"라는 농담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이민자의 나라' 신화가 완성됐습니다. 원주민이 밀려난 자리에,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인은 어디에 있었나 — 페론주의와 지워진 사람들

이민자들이 쌓아 올린 나라는 20세기 초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습니다. 소고기와 밀이 넘쳐났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 풍요는 고르게 나뉘지 않았습니다. 땅은 소수 지주 계급이 독점했고,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 노동자들은 도시 빈민가에 모여 살았습니다.

남미의 파리'를 건설하다

그 불만을 조직한 인물이 후안 페론이었습니다. 1946년 대통령이 된 페론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임금을 올렸으며, 1947년에는 여성 참정권을 법제화해 1951년 선거에서 처음 여성 투표가 이뤄졌습니다. 그의 두 번째 부인 에바 페론(에비타)은 빈민가를 돌며 복지 정책을 펼쳤고, 지금도 아르헨티나 민중 사이에서 성자처럼 기억됩니다. 페론주의는 이후 70년 넘게 아르헨티나 정치의 핵심 축이 됐습니다.

 

그러나 페론이 내세운 '민중(pueblo)'의 범위는 계층·지역·인종에 따라 다르게 작동했습니다. 도시 노동자와 이민자 후손은 그 중심에 들어왔지만, 원주민과 농촌 주변부는 국가 서사의 주변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2025년 현재 아르헨티나 원주민 인구는 공식 통계에서 전체 인구 4,700만 명의 2~3%로 집계되지만, 이 수치 자체가 과소집계 논란을 안고 있습니다. 마푸체족은 지금도 파타고니아 일대에서 토지 반환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패션 기업 베네통 계열 토지회사는 1991년 아르헨티나 남부의 대규모 토지회사를 인수해 파타고니아에 광대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마푸체 공동체와의 토지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쟁점은 단순한 기업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군사정복 이후 형성된 토지소유권을 현재의 법과 원주민 권리가 어떻게 다시 심사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선이 만든 결과 — 포클랜드 전쟁과 민주화의 역설

1976년 3월 24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이후 7년간 이어진 군사독재는 '더러운 전쟁'이라는 이름의 공포정치를 펼쳤습니다. 좌파 혐의자, 반체제 인사, 노동운동가들이 대낮에 거리에서 납치됐습니다. 실종이라는 방식 자체가 가족에게 생사와 행방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국가폭력이었습니다. 이들이 '실종자(Desaparecidos)'입니다.

비극의 시작, 포클랜드/말비나스 전쟁의 공포

군사정권은 1982년 4월 2일 도박을 걸었습니다. 경제 실패와 민심 이반으로 흔들리던 갈티에리 장군이 포클랜드 제도(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를 기습 점령한 것입니다. 아르헨티나가 오랫동안 영유권을 주장해온 섬이었습니다. 국민적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영국은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 해군 기동부대를 파견해 해상·공중·지상작전을 펼쳤습니다. 74일간 이어진 전쟁 끝에 아르헨티나는 항복했습니다(6월 14일). 영국군 255명, 아르헨티나군 649명, 포클랜드 민간인 3명이 사망했습니다. 갈티에리 정권은 붕괴했고, 1983년 민주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포클랜드 전쟁의 역설은 여기에 있습니다. 군사정권이 영토 분쟁을 일으켜 권력을 연장하려 했는데, 그 패배가 오히려 민주화를 앞당겼습니다.

민주화의 열망, 독재의 종식 (본문 '선이 만든 결과 — 포클랜드 전쟁과 민주화의 역설' 섹션 대응)

그 선은 지금도 그어져 있습니다. 포클랜드/말비나스 영유권 분쟁은 2025년에도 미해결 상태입니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카보베르데를 3-2로 꺾은 뒤, 잉글랜드와의 준결승에서 승리하고 나서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를 펼쳐 외교·스포츠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백악관 월드컵 태스크포스 관계자가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이 사건에 대응했는데, 이것이 미국 정부가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을 공식 승인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영유권 주장, 카보베르데전의 외침


오늘의 질문 — 누군가를 지운 땅 위의 자부심

"우리는 이민자의 나라다"라는 아르헨티나의 자부심은 진심입니다. 그런데 그 이민자들이 발 딛고 선 땅은, 누군가를 지운 자리였습니다. 마푸체족의 영토를 빼앗고 쌓아올린 나라. 독재와 실종의 역사를 지나온 나라. 포클랜드/말비나스를 놓고 지금도 선을 긋고 있는 나라입니다.

 

오월광장 어머니들이 매주 목요일 걷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잊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지워진 사람들이 두 번 지워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민자의 나라"라는 정체성과 "누군가를 지운 땅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 이 두 가지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아무도 살지 않던 땅에서 시작한 나라, 카보베르데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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